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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000340
한자 參禮東學農民運動
영어공식명칭 Samrye Donghak Peasant Revolution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박대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892년 11월 - 삼례 동학농민운동 삼례취회 발생
발생|시작 시기/일시 1894년 9월 - 삼례 동학농민운동 삼례기포 발생
발생|시작 장소 삼례취회 발생지 -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지도보기

[정의]

1894년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에서 벌어진 동학농민운동.

[역사적 배경]

삼례[현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는 조선시대 전라도와 중앙을 잇는 교통의 중심지로 여행객들을 위한 시설이 갖추어진 역참이 있었던 곳이었다. 이러한 점이 참작되어 1892년 전라도 일대 동학교도들이 모여 교조의 신원과 동학의 공인, 동학교도에 대한 침탈과 수탈을 금지시켜 줄 것을 전라감사에게 요청하는 집회가 개최되었다. 1894년 5월에는 전주성을 점령하고 있던 동학농민군에 맞서 진압과 회유를 위해 파견된 중앙의 관원들이 모여 전주성 탈환을 모색했으며, 1894년 9월에는 구국항일의병전쟁의 출발지가 되었다.

[경과]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 지역은 동학농민운동과 관련해 일반적으로 두 가지 측면에서 역사적 중요성이 있는 사건이 일어난 곳이다. 첫 번째는 1892년 11월에 동학의 교조신원운동기(敎祖伸冤運動期)에 삼례에서 대규모 집회를 하고, 교조 최제우(崔濟愚)의 신원(伸冤), 동학의 공인(公認), 수령과 지방 토호세력의 동학교도에 대한 탄압과 침탈을 금지시켜 줄 것을 전라감사에게 요청한 ‘삼례취회(參禮聚會)[삼례집회]’이다. 비록 교조의 신원, 동학의 공인을 받지 못했지만, 동학교도에 대한 침탈을 금지시키겠다는 약속을 받아냄으로써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

두 번째는 1894년 9월, 일본이 노골적으로 조선 침략을 가시화하자, 전봉준을 중심으로 의병전쟁을 준비했다. 삼례에 대도소(大都所)를 설치하고, 전라감영을 비롯해 여러 곳에서 전쟁 수행에 필요한 군수품(軍需品) 등을 마련했다. 이와 함께 동학 교단과 연락을 취하면서 전면적인 의병 전쟁에 나아간다. 삼례에서 준비를 마친 동학농민군은 서울을 향해 출발했는데, 이를 ‘삼례기포(參禮起包)’라 부른다. 삼례기포 이후에 일어난 동학농민운동을 2차 동학농민운동이라 하며, 그 성격은 구국항일의병전쟁이라 규정한다.

그러나 1893년 11월 삼례취회에 앞서 삼례에도 동학교도가 있었다. 동학의 2세 교주 해월 최시형은 1870년대 강원도와 경상도를 중심으로 동학의 교세를 본격으로 확장했고, 1880년대에 들어서면서 호남 지방으로 확장했다. 1880년대 호남의 전초기지는 삼례와 가까운 거리에 있는 전라북도 익산의 미륵산에 있는 사자암(獅子庵)이었다. 1887년에 최시형은 전라도의 수부(首府) 전주에서 포교한 후 최시형을 따르는 10여 인과 더불어 삼례에 있는 이몽로(李夢老)의 집을 순회했다. 최시형의 호남 포교 장소에 삼례가 포함된 것이다. 1894년 5월에 동학농민군이 전주성을 점령하고 농성할 당시, 전라감사를 비롯해 정부가 파견된 고위 관리들이 머물면서 동학농민군 진압을 모색한 곳도 바로 삼례였다. 그 당시 삼례에는 전신국(電信局)이 설치되어 있어서 중앙정부와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다른 하나는 우금치전투에서 패배한 동학농민군을 추격하던 일본군이 파악한 삼례에 관한 정보이다. 일본군 자료에 따르면, 그 당시 삼례 사람 모두가 동학교도였고, 동학농민군이 최후 항쟁을 벌이기 위해서 총집결할 장소로 예상되었다. 이에 따라 일본군은 삼례를 포위해 공격할 계획을 세웠다. 1894년 당시 삼례에는 100여 호 인구가 살았으며, 역참(驛站)이 있는 교통의 중심지였던 까닭에 주막 등 여행객을 위한 편의시설이 발달해 있었다.

[결과]

동학농민운동에서 1892년 11월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 지역은 동학 교도에 대한 침탈을 금지시키겠다는 전라감사의 약속을 받아낸 삼례취회, 1894년 9월 일본군을 몰아내는 국구항일의병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삼례기포가 일어난 곳이다.

[의의와 평가]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는 1892년 동학의 교조신원을 위한 집회장소였으며, 1894년 5월 동학농민군이 전주성을 점령할 당시에는 중앙에서 파견된 전라감사 등 관원들이 모여 전주성 회복과 동학농민군 진압을 모색했던 정부군의 진지이며, 1894년 9월 일본의 조선 침략에 맞서 일으킨 구국항일의병전쟁의 출발지가 되었고, 우금치전투 이후 남하하던 동학농민군이 거쳐간 곳이다. 특히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 지역은 동학농민군이 추구했던 보국안민과 척왜양의 평화운동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고자 했던 상징적인 장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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