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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000507
한자 金坪里南方凞, 南壽熙旌閭
영어공식명칭 Monument Gate for Nam Su-hui, Nam Bang-hui in Geumpyeong-ri
분야 문화유산/유형 유산,역사/근현대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금평리 신풍마을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최범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883년(고종 20)연표보기 - 금평리 남방희, 남수희 정려 명정
개축|증축 시기/일시 1989년 8월 - 금평리 남방희, 남수희 정려 개수
현 소재지 남방희와 남수희 쌍효각 -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금평리 신풍마을 지도보기
성격 쌍효각
양식 홑처마 맞배 기와지붕
정면 칸수 2칸
측면 칸수 1칸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금평리 신풍마을에 있는 개화기 남방희남수희 쌍효각.

[개설]

금평리 남방희, 남수희 정려남수희남방희 형제의 쌍효각이다. 남수희는 신혼을 모르고 살았으며, 부모님 병 치료에 백약을 찾다 보니 재산이 줄고 집안이 기울어졌다. 3년간 고기와 술을 입에 대지 않았으며 아주 검소하게 살았다. 날마다 부모 묘를 찾아 살폈고 울음소리와 눈물이 그친 날이 없었다. 제기와 향탁이 깨끗했으며 애절한 초상 때와 마찬가지로 숙연했으며 찬밥 한 덩이, 시래깃국 한 대접을 보고 울던 효심이 남씨들의 음덕이 되었다. 79세에 작고했다. 남방희는 ‘난형난제’라 했듯이 부모님 병환에 방심한 적이 없었다. 형을 위해 더욱 분발했으니 효자와 우애를 실천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1882년(고종 19) 5월 정읍, 고부, 김제, 태인, 나주, 창평, 임실, 전주, 남원 유림들이 포상 신청을 올렸다. 그러자 이듬해인 1883년(고종 20) 8월 정문 세우기를 허락했다.

[위치]

금평리 남방희, 남수희 정려각은 완주군 이서면 금평리 신풍마을 경로회관 앞 길가에 있다.

[변천]

1883년(고종 20년)에 정문을 건립했으며, 이후 남공쌍효행장문(南公雙孝行狀文)에는 ‘1989년 기사(己巳) 8월 개수했다’라는 내용과 동년 동일에 현액되었다는 글이 적혀 있다.

[형태]

금평리 남방희, 남수희 정려 비각의 크기는 정면 2칸[1칸=150㎝], 측면1칸[270㎝]이며 맞배지붕 형태로 되어 있다. 편액의 크기는 125×40㎝, 행장문의 크기는 125×40㎝이다. 편액에는 ‘효자 통훈대부 도사 남수희지려(孝子 通訓大夫 都事 南壽熙之閭)’, ‘효자 통정대부 부호군 남방희지려(孝子 通政大夫 副護軍 南方熙之閭)’라고 쓰여 있다.

[현황]

금평리 남방희, 남수희 정려각 담장 출입문 머리에 쌍효각(雙孝閣) 액자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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