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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000700
한자 柳宗興
영어공식명칭 Yu Jong-heung
이칭/별칭 진보(振甫),월곡(月谷)
분야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유호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52년(효종 3)연표보기 - 유종흥 출생
거주|이주지 유종흥 거주지 -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지도보기
사당|배향지 유종흥 배향비 -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 464 지도보기
성격 학자
성별 남자
본관 고흥(高興)

[정의]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에서 은둔했던 문인.

[가계]

유종흥(柳宗興)[1652~?]의 본관은 고흥(高興)이며, 자는 진보(振甫)이고, 호는 월곡(月谷)이다. 광해군 대에 대사간(大司諫)과 홍문관부제학(弘文館副提學)을 지낸 유숙(柳潚)의 증손으로, 부제학(副提學) 유간(柳藖)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별좌(別坐) 김자건(金自鍵)의 딸이다. 유종흥의 조카 유건(柳謇)은 1729년(영조 5)의 식년문과 급제자이다. 현감 송국사(宋國士)의 딸을 아내로 맞이했으나 자식이 없었으며, 뒤에 참봉 안시태(安始泰)의 딸을 아내로 맞이해서 3남 2녀를 낳았으며, 서자가 2명 있었다.

[활동 사항]

유종흥은 1689년(숙종 15)에 인현왕후(仁顯王后)가 폐위되자 여러 선비들을 이끌고 입궐해서 그 부당함을 주장하고 철회할 것을 강력히 주장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자 과거를 통해 관직에 나아가는 일을 그만두고 고산의 월곡[현재 완주군 비봉면]에서 은둔생활을 했다. 그 행위가 마치 유종흥의 증조할아버지 유숙이 광해군 대에 소(疏)를 올려 이이첨(李爾瞻) 등 5적(賊)을 베어 나라의 윤리를 바로잡을 것을 주장한 일과 같다고 해서 당시의 유림들로부터 그 할아버지에 그 손자라는 평판을 받았다. 그 뒤 1694년(숙종 20)에 갑술옥사가 일어나 남인들이 실각하고 인현왕후가 환궁하게 되자 시를 지어 기쁨을 표시했다.

[학문과 저술]

유종흥은 관곡(寬谷) 최서림(崔瑞琳)에게서 학문을 배웠다. 저서로는 『상제례(喪制禮)』, 『가훈(家訓)』 등이 있다.

[상훈과 추모]

유종흥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봉양서원(鳳陽書院)에 배향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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