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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000736
한자 金榮泰
영어공식명칭 Kim Yeong-tae
이칭/별칭 화선(和善)
분야 성씨·인물/근현대 인물,역사/근현대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이선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51년(철종 2)연표보기 - 김영태 출생
몰년 시기/일시 1934년연표보기 - 김영태 사망
출생지 김영태 출생지 -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와룡리 지도보기
성격 효자
성별 남자
본관 안동(安東)

[정의]

근대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에서 활동한 효자.

[가계]

김영태(金榮泰)[1851~1934]의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는 화선(和善)이다. 고려시대 대사성을 지낸 김구용(金九容)의 18세손으로 돈녕부 도정 김세원(金世源)의 아들이다. 할아버지는 김진국(金鎭國), 증조할아버지는 김창욱(金昌旭)이다.

[활동 사항]

김영태는 가선대부비원비서서승관(嘉善大夫秘院秘書書丞官)을 지냈다. 천성이 온후하고 효성이 지극했으며, 손님 접대에 후해서 칭송이 자자했다. 가산 중 몇 마지기의 논과 7그루의 감나무에서 수확한 것은 오직 손님 접대에만 사용했으며, 4~5일씩 묵고 가는 나그네에게 노자를 주어 보내는 등 손님 대접을 남달리 잘 해서 빈객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고을 사람들이 김영태의 효성과 행의(行誼)를 가상하게 여겨 김영태를 추천해 나라에서 1903년(광무 7)에 벼슬을 내렸다. 부인 강씨는 강준서(姜俊瑞)의 딸로 시아버지가 등창으로 앓을 때, 2년간 매일 피고름을 빨아내는 등 효행이 지극했으며, 거상(居喪)에 몸을 해칠 정도로 슬퍼했다고 한다. 그 효행에 대해서는 『고산지』 효부 편에 실려 있다.

[상훈과 추모]

김영태 부부의 효행과 시혜를 기리기 위해 1970년에 화산면 와룡리 가양동구 밖에 구연건(具然建)이 글을 짓고 황상규(黃祥奎)가 쓴 비각을 건립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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