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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000747
한자 柳淵淸
영어공식명칭 Yu Yeon-cheong
이칭/별칭 춘호(春浩),춘일(春一)
분야 성씨·인물/근현대 인물,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이선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69년(고종 6)연표보기 - 유연청 출생
몰년 시기/일시 1928년연표보기 - 유연청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83년연표보기 - 유연청 대통령 표창
출생지 유연청 출생지 -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飛鳳面) 내월리(內月里) 지도보기
성격 의병
성별 남자
본관 고흥(高興)

[정의]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완주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개설]

유연청(柳淵淸)[1869~1928]은 군자금을 모금하는 등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가계]

유연청의 본관은 고흥(高興), 이명(異名)은 춘호(春浩) 또는 춘일(春一)이다.

[활동 사항]

유연청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된 후에 유중화(柳重和)[자 치복(致福)] 등 유씨 가문의 8명과 더불어 일본에 항거하는 의진을 구성하였다. 세칭 ‘유문구의사(柳門九義士)’라고 하는데, 유중화, 유현석(柳炫錫), 유영석(柳瑛錫), 유준석(柳俊錫), 유태석(柳泰錫), 유명석(柳命錫), 유연청(柳淵靑), 유연풍(柳淵豊), 유연봉(柳淵奉)이다. 유연청은 친족 8명과 뜻을 모아 의병 활동에 필요한 군자금을 모으기로 하였다. 유연청은 1906년 10월과 1907년 5월에 두 차례에 걸쳐 이봉승(李奉承)의 집에서 군자금을 모금하였고, 1907년 10월 유현석(柳炫錫) 등 7명과 더불어 익산군 여산면 원수리(礪山面 源水里) 노상에서, 1907년 10월에는 한흥수(韓興洙)의 집에서 모금하였다. 그 후 일제가1909년 9월 1일부터 10월 30일까지 2개월에 걸쳐 의병세력의 주요 근거지에 일본군 등을 배치하여 의병을 진압하는 남한대토벌 작전을 펼쳤다. 이에 유연청 등은 의진을 해산하고 은신하였으나 1916년에 일본 경찰에 탐지되어 ‘유문구의사’가 모두 체포되었다. 1901년 강제병합 당시에 의병 활동에 대한 대사령이 내려졌기 때문에 이들을 처벌할 수 없게 되자, 일본 경찰은 솔티재에서 행인의 돈을 강탈하였다는 죄를 날조하여 10~15년에 이르는 중형을 언도하였다. 유연청은 12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상훈과 추모]

유연청은 1983년에 대통령 표창,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1982년 5월 고산 유림(儒林)들의 주선으로 비봉면 내월리(飛鳳面 內月里)에 ‘고흥유씨 일문 구의사 사적비(高興柳氏一門九義士事蹟碑)’가 세워졌다.

완주군 독립운동 추모공원에 있는 완주 출신 순국선열 및 애국지사 28위에 포함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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