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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000944
한자 高山聖堂
영어공식명칭 Gosan Catholic Church
이칭/별칭 천주교 전주교구 고산교회
분야 종교/기독교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읍내7길 20[읍내리 98]
시대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하태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891년 10월 10일연표보기 - 되재본당 설립
관련 사항 시기/일시 1896년 11월 1일 - 되재성당 축복식
이전 시기/일시 1942년 6월 10일 - 수청본당 신설
해체 시기/일시 1944년 10월 30일 - 되재성당 폐쇄, 수청본당 소속 공소
이전 시기/일시 1951년 5월 - 삼례본당 소속 공소
개칭 시기/일시 1958년 4월 25일연표보기 - 고산성당으로 승격
최초 설립지 되재성당 -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승치로 477[승치리 729-1]지도보기
주소 변경 이력 수청성당 -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대둔산로 854-12[구제리 116]지도보기
현 소재지 고산성당 -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읍내7길 20[읍내리 98]지도보기
성격 성당
설립자 우도 신부
전화 063-261-6012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읍내리에 있는 천주교 전주교구 소속 성당.

[개설]

고산성당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양야리 제외],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전라북도 완주군 경천면,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전라북도 완주군 동상면[수만리 제외],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천호, 대치리 제외] 일원을 담당하는 로마가톨릭교회이다.

[설립 목적]

고산성당의 모태는 되재성당이다. 고산 지역에 천주교 공동체가 형성된 시기는 1791년(정조 15) 신해박해 이후였다. 진산[전라도]의 윤지충을 시작으로 충청도 신자들이 고산 지역으로 이주하기 시작하였으며, 1801년 신유박해 이후에는 전국에서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고산 지역으로 모여들었다. 이로 인해 본격적인 선교 시기에는 선교사들이 고산 지역에 거처를 정하고 선교하였다. 그 중심 지역이 천호와 되재이다.

[변천]

1891년 뮈텔 주교는 전라도의 북부지방, 곧 고산 지방을 분할하여 우도 신부를 본당신부로 발령하였다. 우도 신부는 차돌박이[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구제리]에 거주하면서 성당을 세울 장소를 물색하다가 부산으로 발령을 받아 갔다. 1893년 4월, 후임으로 비에모 신부가 되재[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승치리]에 성당을 신축하기로 결정하였다. 1894년 1월에 성당 신축을 시작하였는데 동학농민혁명으로 말미암아 중단되었지만, 1895년 6월 2일 공사를 마치고 첫 미사를 봉헌하였다. 되재성당은 전통적인 한옥 형태로, 우리나라에서는 두 번째, 한강 이남에서는 최초 성당으로 완공되었다. 뮈텔 주교는 1896년 11월 1일 성당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되재본당은 1929년 5월 가사벌에 본당을 신설하여 분리하였고, 1942년 6월에는 수청본당을 분리하였다. 그리고 1944년 10월 30일 서병익 신부가 휴양차 주교관으로 전임되면서 신부가 공석이 된 되재성당은 수청성당의 공소가 되었다. 수청성당 역시 전쟁으로 인해 서정수 신부가 종군사제로 떠나게 되어 공석이 되었고, 이후 본당이 폐쇄되면서 삼례본당 소속 공소가 되었다. 한국전쟁 때 되재성당은 소실되었다. 한국전쟁 이후 삼례성당 김영구 신부는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 지역에 성당이 세워져야한다고 판단하여 1954년 고산 읍내리에 땅을 매입하였다. 구호물자를 이용하여 재정을 확보하고, 신자들의 봉사에 힘입어 공사에 착수하여 1958년 1월 15일 고산성당 낙성식을 하였다. 1958년 4월 25일 되재성당과 수청성당의 맥을 잇는 고산본당이 설립되었다. 1989년 11월에는 본당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성전 신축을 추진하였다. 신자들은 곶감, 고추, 마늘, 쌀, 유자차, 감잎차 등의 농산물을 판매하며 기금을 마련하였고, 1994년 11월 1일 본당 건립 100주년 기념 성당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1995년 8월에는 수녀원 축성식을 가졌으며, 2013년 11월에는 교육관을 신축기공식을 가졌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고산성당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되재성당에서는 1906년 신성학교를 설립하여 육영사업을 시작하였다. 1908년에는 태극계명학교로 개편하여 4년제 교육과정으로 학생들을 양성하였다. 교과목은 한글, 한문, 산수, 화학, 물리, 지리, 국사 등이었다. 그리고 1908년 12월에는 태극계명측량강습소를 설립하여 직업교육을 시키기도 하였다. 고산성당이 설립된 이후에는 농민들의 의식 개혁에 주력하였다. 1979년 노풍피해보상운동, 1985년 소값 폭락과 외국 농산물 수입으로 인한 피해 대책 촉구 소몰이 시위 등 농민회 활동에 함께 하며 지역사회의 구심점 역할을 하였다.

[현황]

2018년 9월 5일 현재 주임신부는 김병희 요셉, 수녀는 양 아우구스티노, 최 세라피나, 사목회장은 최지선 야고보가 맡고 있으며, 신자수는 586세대 1462명[남 652명, 여 810명]이다. 고산성당의 관할 공소는 비봉공소, 우월공소, 미남공소, 되재공소, 경천공소 등 총 13개이다.

[의의와 평가]

고산 지역은 전라도의 관문으로서 조선 후기 천주교가 시작되는 시점부터 많은 이들이 거주하여 곳곳에 교우촌을 형성하였던 곳이다. 전쟁과 사제 수급 문제로 일정 기간 성당이 폐쇄되기도 했지만, 1891년 이래 고산 지역의 신앙인들과 지역민들과 함께 동고동락을 함께 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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