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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001114
한자 樓亭
영어공식명칭 Pavilion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북도 완주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남해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0년 6월 30일 - 남계정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34호로 지정
관련 소재지 남계정 -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두현리 지도보기
관련 소재지 삼기리 삼기정 -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삼기리 지도보기
관련 소재지 후정리 비비정 -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후정리 지도보기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에 있는 누정.

[개설]

누정건축은 사방이 터진 곳이나 경관이 수려한 곳에 주변 환경을 멀리 넓게 볼 수 있도록 높게 지은 건축물을 말한다. 누정건축은 풍류를 즐기며 정신수양의 장소로 활용하기도 했고 때로는 공부하고 학문을 연구하기도 했으며 종교적인 조상숭배를 위한 기능, 지역적인 계 모임의 공동생활 기능 등을 담기 위해 건축되었다. 이는 자연인으로서의 청렴함과 검소한 생활로 자연에 순응하고자 하는 생활철학이었다. 누정에 관한 기록은 636년(백제 무왕 37) “신하들과 망해루에서 잔치를 치렀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을 볼 수 있고, 『삼국사기』에서도 신라 망은루, 명학루, 월상루 등의 누각 이름을 찾아볼 수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 성곽 그림에서도 누각 형태의 건축물이 나타남으로써 궁궐 및 관아 건축이 공공시설로서 일찍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경주의 안압지와 임해전에서도 자연 속에서의 생활을 누리고자 인공 연못과 수림을 만들고 주위에 누정을 건축했다. 정자도 마찬가지로 『삼국유사』에서 488년(신라 소지왕 10) 천천정에 임금이 행차했다는 기록이 있어서, 삼국시대부터 정자가 건축되었음을 알 수 있다.

[완주군의 누정]

완주군의 누정은 고산면삼기정(三奇亭), 구이면남계정(南溪亭)[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34호], 삼효정(三孝亭), 삼례읍비비정(飛飛亭), 봉동읍의 영락정(英樂亭) 등이 전한다. 이 중 구이면남계정은 조선 중기의 학자 남계 이온이 후진 양성을 위해 지은 정자이고 고산면삼기정을 비롯한 다른 누정은 주변의 수려한 경관을 즐기기 위해 건축되었다.

1. 남계정

남계정완주군 구이면 두현리에 있는데 조선 중기의 유학자 김진(金瑱)이 1580년(선조 13) 후진 양성을 위해 처음 세웠다. 남계정은 정면 2칸, 측면 2칸으로 방과 대청으로 되어 있다. 남계정 내부에는 많은 편액들이 걸려 있는데 ‘남계정 중수기(南溪亭重修記)’를 비롯해 의병장 조헌(趙憲)과 고경명(高敬命), 부제학 심음시 등이 김진의 덕을 기리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남계정 아래의 절벽에는 바위 위에 ‘남계정’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2. 삼기정

삼기정고산면 삼기리에 있는데 1439년(세종 21)에 율헌 최득지(崔得之)가 처음 세웠다. 삼기정은 정면 2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1875년(고종 12) 최득지의 후손들이 정자의 자리에 유허비를 세웠으며, 기우만(奇宇萬)[1846~1916]이 비문을 지었다. 강암(剛菴) 송성용(宋成鏞)이 쓴 ‘삼기정(三奇亭)’이라는 현판이 외부에 걸려 있다.

3. 비비정

비비정삼례읍 후정리의 ‘한내[寒川]’라 부르는 강인 삼례천의 북쪽 언덕 위에 세워진 정자로 수려한 경관을 자랑한다. 비비정은 1573년(선조 6)에 무인 최영길(崔永吉)이 처음 세운 후 철거되었다가 1752년(영조 28)에 관찰사 서명구(徐命九)가 중건했다. 비비정은 기러기가 쉬어 가는 곳이라 해서 ‘비비낙안(飛飛落雁)’이라 지칭되었고 완산 8경 중 하나이다. 선비들은 비비정에 올라 술을 마시고 시와 운문을 지으며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비비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평면은 누마루로 되어 있으며 주위로 계자난간[닭벼슬난간, 초각한 짧은 기둥으로 꾸민 난간]을 설치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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