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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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부터 1392년까지 고려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전라북도 완주군의 역사와 문화. 각종 지리지에 의하면 고려시대 전라북도 완주 지역에는 전주목(全州牧), 이성현(伊城縣)·우주현(紆州縣)·고산현(高山縣)·운제현(雲梯縣)이 있었고, 향소부곡으로 경명향(景明鄕)·양량소(陽良所)·재남소(才南所) 등이 있었다. 전주목은 백제시기에는 완산(完山)이었으며, 후삼국시대에는 후백제의 수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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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안덕리와 원기리, 항가리에 걸쳐 있는 산. 예부터 엄뫼, 큰뫼로 불려온 모악산은 정상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쉰길바위가 아기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형상과 같아서 ‘모악산’이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고려사』의 기록에 “태조 18년 을미(935년) 봄 3월에 견훤의 아들 신검(神劒)이 그 아버지를 금산(金山)의 절에 가두고, 그 아우 금강(金剛)을 죽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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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에 설치되었던 교통편의시설. 옥포역(玉庖驛)은 『고려사』 권82, 「병지 참역」에서 “전공주도(全公州道)는 21역을 관장한다. 삼례(參禮)[全州], 앵곡(鶯谷)[伊城], 옥포(玉庖)[雲梯]…… 정민(貞民)[懷德]이다”라는 내용이 기록상에서 처음 등장한다. 『세종실록』, 『세조실록』에서는 교통로 개편에 따라 관할역이 변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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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년 거란의 3차 침입 당시 현종이 전라북도 완주군 지역을 거쳐 나주로 피난간 사건. 거란군은 1010년(현종 1) 11월 1일에 장군 소응(蕭凝)을 보내 고려를 공격하겠다는 사실을 알리고, 1010년 11월 16일에 압록강을 건너 흥화진(興化鎭)을 공격하면서 3차 침입을 감행했다. 이 때문에 현종은 1010년 12월 28일에 피난길에 올랐다. 피난길을 『고려사』와 『고려사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