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전리 파평윤씨, 신범균처 경주김씨 정려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000514
한자 海田里坡平尹氏, 申範均妻慶州金氏旌閭
영어공식명칭 Monument Gate for Gyeongju Kim Clan of Wife of Sin beom-gyun, Papyeong Yun Clan in Haejeon-ri
분야 문화유산/유형 유산,역사/근현대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해전리 231-16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최범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28년 8월연표보기 - 해전리 파평윤씨, 신범균처 경주김씨 정려 건립
현 소재지 해전리 파평윤씨, 신범균처 경주김씨 정려 -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해전리 231-16 지도보기
성격 정려각
양식 겹처마 맞배지붕
정면 칸수 2칸
측면 칸수 1칸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해전리 해전마을에 있는 일제강점기 경주김씨신범균파평윤씨의 정려.

[개설]

경주김씨는 남편인 신태로(申泰魯)가 나이 겨우 20대에 의원도 모르는 병에 걸리자 온갖 노력으로 치료에 힘썼으며, 약이란 약은 두루 구해 써 보고 대변의 맛을 보기까지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손가락을 잘라 입에 피를 떨어뜨렸다. 간병은 허사가 되고 낭군은 눈을 감았다. 외아들 신범균과 시어머니를 위해 온갖 정성을 다했다. 파평윤씨[1870~1951]는 윤내성의 딸이다. 남편은 신범균[1873~1909]으로 자는 치현이다. 남편이 일점혈육도 없이 30세에 죽었고, 선조의 제사를 잇기 위해 당질 신현일[신성균의 아들]을 양자로 삼았으며, 시어머니를 위해 단지주혈했다. 추위와 더위를 가리지 않고 날마다 시어머니 묘를 찾아가 울었고 삭망(朔望)에는 술과 좋은 음식을 올리고 통곡을 했다. 평생 아끼고 모은 돈과 곡식을 어려운 일가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가난한 이웃들의 혼인과 초상에도 아낌없이 나누어 주었다. 경주김씨파평윤씨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였다.

[위치]

해전리 파평윤씨, 신범균처 경주김씨 정려완주군 삼례읍에서 익산시로 가는 길인 해전리의 해전마을 안쪽에 자리하고 있다.

[변천]

1928년 3월에 모성공회에 포상을 건의했고, 그해 8월에 해전리 파평윤씨, 신범균처 경주김씨 정문을 세웠다.

[형태]

해전리 파평윤씨, 신범균처 경주김씨 정려비각은 정면 2칸[180×180㎝], 측면 1칸[118㎝]이며 맞배지붕 형태로 되어 있으며, 경주김씨, 열부 파평윤씨의 편액이 보관되어 있다. 편액의 크기는 136×40㎝이다. 편액에는 ‘효열부 고학생 평산신공 범균배 파평윤씨지문(孝烈婦 故學生 平山申公 範均配 坡平尹氏之門), 열부 고학생 평산신공 태로배 경주김씨지문(烈婦 故學生 平山申公 泰魯配 慶州金氏之文)’이라고 적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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