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05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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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牙山鳳谷寺文殊菩薩坐像 |
영어공식명칭 | Seated Manjusri Bodhisattva of Bonggoksa Temple, in Asan |
이칭/별칭 | 아산 봉곡사 목조보살좌상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불상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도송로632번길 138[유곡리 595]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용윤 |
현 소장처 | 봉곡사 -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도송로632번길 138[유곡리 5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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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불상 |
재질 | 목재 |
크기(높이) | 71.6㎝[높이]|51.4㎝[무릎 너비] |
소유자 | 대한불교조계종 봉곡사 |
관리자 | 대한불교조계종 봉곡사 |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유곡리 봉곡사에 있는 조선 후기 불상.
[개설]
아산 봉곡사 문수보살좌상은 대웅전에 봉안된 주불(主佛)인 아산 봉곡사 목조석가여래좌상(木造釋迦如來坐像)과 양식적 특징이 유사하다. 본래는 석가여래 삼존상(三尊像)의 구성이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조선 후기의 작품으로 보인다.
[형태]
아산 봉곡사 문수보살좌상은 높이 약 71.6㎝의 불상이다. 대웅전에 봉안된 석가여래좌상에 비해 크기가 약간 작아 존상(尊像)의 위계를 구분하였음이 확인되며, 방형(方形)[네모반듯한 모양]의 얼굴에 둥근 턱 등 상호(相好) 표현은 대웅전의 석가여래좌상과 유사하다. 머리에는 보관(寶冠)을 착용하였고 보발(寶髮)의 끝은 귀를 한 바퀴 돌아서 어깨로 흘러내리고 있다.
수인(手印)[양쪽 손가락으로 나타내는 모양]은 오른손은 가슴 부근까지, 왼손은 배 부근까지 각각 들어 올려 엄지와 중지를 맞대어 결인(結印)[불상이나 보살상이 손가락을 펴거나 구부려서 여러 가지 모양을 하고 있는 것]하였다. 이는 특정 존상에 한정되지 않는 조선 후기 보살상의 일반적인 수인이다. 착의(着衣)는 대의(大衣) 안에 편삼(偏衫)을 걸친 이중착의(二重着衣)[이중으로 옷을 끼워 입는 법]로 대의와 편삼은 배 아래 부근에서 W형으로 교차한다. 왼쪽 무릎을 중심으로 좌우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지는데, 군의(裙衣)[허리 밑까지 내려오는 긴 겉옷] 자락의 옷 주름도 대웅전의 석가여래좌상과 유사하다.
[특징]
아산 봉곡사 문수보살좌상은 대웅전의 석가여래좌상과 마찬가지로 조능(祖能) 혹은 그 계보 조각승의 작품으로 추정할 수 있다. 상호의 표현이나 군의 자락의 요철(凹凸)이 짙은 부채꼴 모양의 옷 주름 표현과 왼쪽 어깨 옷 주름 등의 양식적 특징은 조능 작품의 특징이다. 조능은 혜희(惠熙)와 더불어 법령(法靈)의 제자로 17세기 중반 활약한 중요한 조각승으로, 조능의 작풍은 혜희와 유사하면서도 독자적인 양식을 가지고 있다.
현재 문수보살로 전해지고 있으나 제작 당시의 존명(尊名)인지는 자세한 검토가 필요하다. 전언에 따르면 불상의 내부에서 세조 연간에 간행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5권이 발견되었다고 하나, 기록이 확실치 않으며 현재 사중(寺中)[절의 안]에는 남아 있지 않다.
[의의와 평가]
아산 봉곡사 문수보살좌상은 대웅전의 석가여래좌상과 더불어 삼존불(三尊佛)로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충청남도 지역에서 석가삼존(釋迦三尊)[석가모니, 문수보살, 보현보살 세 부처의 존칭]의 도상(圖像)을 한 목조상이 남아 있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 봉곡사 대웅전의 석가여래좌상과 문수보살좌상의 경우 삼존이 모두 현전하지는 않지만 석가삼존상으로 후세에 남아 보존되는 중요한 작례이다. 조각승인 조능은 스승인 법령의 뒤를 이어 활발히 활동한 작가이다. 법령의 대표적 제자인 혜희와 함께 법령파의 맥을 잇는 조각승으로, 아산 봉곡사 문수보살좌상을 통해 조능의 활동 영역이 충청남도 아산 지역까지 미쳤음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