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8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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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邱 鳳山洞 月見山 - |
이칭/별칭 | 대구 봉산동 월견산 지석묘군,신천 좌안의 고인돌[지석묘군],신천 유역의 고인돌[지석묘군]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고분 |
지역 | 대구광역시 중구 봉산동 230-1 |
시대 | 선사/청동기 |
집필자 | 민선례 |
조성 시기/일시 | 청동기시대 - 대구 봉산동 월견산 고인돌 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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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대구 봉산동 월견산 고인돌 -
대구광역시 중구 봉산동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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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고분 |
양식 | 고인돌 |
크기(높이,지름) | 190㎝[길이]|130㎝[너비]|80㎝[높이] |
대구광역시 중구 봉산동 월견산 일대에 있었던 청동기시대 고인돌.
대구 봉산동 월견산(大邱鳳山洞月見山) 고인돌[지석묘]은 신천 서쪽에 신천과 나란하게 형성된 해발 78m의 나지막한 구릉에 있었다. 구릉은 과거 월견산(月見山), 연귀산(連龜山), 운귀산(雲龜山), 오포산(午砲山), 자라바우산 등으로 불렸다고 한다. 월견산은 조선의 문신이자 학자인 서거정(徐居正)[1420~1488]의 대구십경(大邱十景) 중 제3경인 귀수춘운(龜峀春雲)[거북산의 봄구름]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대구부사(大邱府史)』에는 고인돌이 월견산 정상에 5기가 있고, 산기슭에 2기가 있었다고 한다. 정상에 있던 ‘구암(龜岩)’이라고 불린 가장 큰 고인돌 1기만 현재 제일중학교 교정에 이전되어 남아 있다.
대구 봉산동 월견산 고인돌은 현재 대구광역시 중구 봉산동 28-1번지 제일중학교 교정에 1기 남아 있다.
대구 봉산동 월견산 고인돌 덮개돌[상석(上石)]은 거북모양[구형(龜形)]이며, 재질은 화강암이다. 크기는 길이 190㎝, 너비 130㎝, 현재 높이 80㎝이며, 윗면에 지름 5㎝ 내외의 홈구멍[성혈(性穴)] 3개가 있다. 『대구부사』의 기록에는 머리 방향이 서남향(西南向)이며, 덮개돌 아래에는 판석으로 만들어진 석곽이 노출되어 있었다고 한다.
『대구부사』에는 월견산 정상의 가장 큰 고인돌 주변에서 돌도끼[석부]와 붉은색간토기편이 수습되었다고 한다.
대구 봉산동 월견산 고인돌은 현재 제일중학교 교정에 이전하여 관리되고 있다.
신천 유역에 분포하는 대부분의 고인돌은 신천에 의하여 형성된 자연제방에 분포하지만, 대구 봉산동 월견산 고인돌은 구릉 정상부와 산기슭에 분포하였다는 차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