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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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水原白氏 |
영어공식명칭 | Suwan Baek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대구광역시 중구 대신동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세욱 |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 1341년 - 백인관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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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 1421년 - 백인관 사망 |
본관 | 수원 - 경기도 수원시 |
입향지 | 노곡동 -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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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거|집성지 | 노곡동 -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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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 시조 | 백우경 |
입향 시조 | 백인관 |
백우경을 시조로 하고 백인관을 입향조로 하는 대구광역시의 세거 성씨.
『수원백씨대동보(水原白氏大同譜)』에 따르면, 중국 황제(黃帝)의 후손 백우경(白宇經)이 소주(蘇州)에서 태어나 당나라 때 이부상서에 이르렀으나, 간신들의 모함을 받아 780년 신라로 건너와 자옥산(紫玉山)[현 경상북도 월성군 안강읍 옥산동] 밑에 정착한 것에 시원을 둔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후 백우경은 영월당(迎月堂)과 만세암(萬歲庵)을 짓고 학문 보급에 진력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백우경 이후의 세계(世系)가 불분명하여 경덕왕(景德王) 때 백창직(白昌稷)을 중시조로 삼게 되었다. 이후 백창직의 증손자인 백휘(白揮)가 대장군으로서 수원군(水原君)에 봉해졌고, 9세손 백천장(白天藏)이 원나라에서 이부상서와 우승상을 지내고 귀국하여 충선왕(忠宣王) 때 수성백(隨城伯)에 책봉되어 후손들이 수원을 관향으로 삼게 되었다. 수원백씨는 중시조 백창직의 후대에서 선정공파(禪亭公派)·인주공파(仁州公派)·오산군파(鰲山君派) 등 29개 파로 갈라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수원백씨 대구 입향조는 백인관(白仁寬)[1341~1421]이다. 백인관의 자는 사달(士達)이고, 호는 선정(禪亭)이다. 집현전대학사를 지냈으며, 고려가 망하자 부모를 모시고 수원으로 낙향하여 조선 태종(太宗)의 세 차례 부름에도 나아가지 않았다. 이후 선산(善山)으로 이거하여 야은(冶隱) 길재(吉再)[1353~1419]와 교유하며 지내다가 지금의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동에 은거하였다. 이후 후손들이 노곡동을 근거지로 대구 지역에서 집성촌을 이루어 세거하게 되었다.
수원백씨는 대구를 비롯하여 강원도와 경기도, 충청남도, 전라도, 경상남도, 경상북도 예천군 등지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5년 현재 수원백씨는 35만 4428명으로 조사되었다.
대구 지역 수원백씨 관련 유적으로는 북구 노곡동에 화암서원(華巖書院)이 있다. 화암서원에는 입향조 백인관을 비롯하여 백인관의 6세손인 백문련(白文連)[1502~?]과 13세손 백용채(白龍采)[1735~1789]가 배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