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82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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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壽城水利組合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임삼조 |
[정의]
일제 강점기 대구광역시 수성구 일대에 있었던 수리조합.
[개설]
일제는 1914년 3월 1일에 지방행정구역 개편을 통하여 대구부와 달성군을 분리하였고, 수성면은 달성군에 편입되었다. 수성면은 1920년대 초반 4만 석의 쌀을 생산할 정도로 비옥하였고, 달성군 내에서도 대표적인 쌀 생산지였다. 이러한 이유로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달성군에서 가장 많이 이주한 곳은 바로 수성면이었다. 1917년에 달성군의 동척(東拓) 이민 인구는 수성면 125명, 화원면 69명, 달성면 26명 순이었다. 또 이주지 면적에서는 수성면 46.754정[46만 3676㎡(14만 262평)], 화원면 23.562정[23만 3673㎡(7만 686평)], 달서면 12.1206정[12만 205㎡(3만 6362평)] 순으로, 수성면이 달성군의 절반을 차지하였다.
[설립 목적]
대구는 경부선 철도가 개통된 후 인구가 급증하기 시작하여 1914년에는 거주 인구가 1만 명을 넘어섰다. 따라서 상수도시설과 상수원의 부족으로 인하여 시민의 급수 상태가 매우 악화되어 제한 급수가 이루어질 정도였다. 따라서 대구부는 1914년부터 1918년까지 가창정수장과 대봉1호 배수지 등 상수도 시설을 확충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구 지역의 물 부족 현상은 해결되지 않았고, 오히려 달성군 수성면 내 약 2,500정보[2479만 3388㎡]의 논에 물이 말라 피해가 심각하였다. 경북도장관은 수성면에 대보(大洑), 유보(柳洑), 덕토보(德吐洑) 등 3개 보를 개수하여 농업용수 문제를 해결하였다. 수원의 부족과 수요자의 사용량 급증으로 발생한 급수 제한을 해제하였지만, 만성적인 상수도시설과 상수원 부족은 1920년대에도 계속되었다. 대구부는 수성수리조합을 설립하고 대봉2호 배수지를 준공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변천]
수성수리조합은 1924년 5월 26일에 설립되었다. 당시 경상북도에서 세 번째로 세워진 수리조합이다. 대구부윤·달성군수·경상북도지사뿐 아니라 한인 대지주와 일본인 등이 비밀리에 수성수리조합 설립을 추진하였다. 표면상 수성수리조합 설립 주체는 강석회(姜錫會)·서화춘(徐和春)·정재학(鄭在學)·진희규(秦喜葵) 등 한인 대지주와 일본인 미즈사키 린타로[水崎林太郞]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수성수리조합은 1927년 4월 24일에 저수지[현 수성못]를 준공하였다. 수성수리조합의 저수지는 처음부터 상수원 해결과 유원지 조성을 목적으로 준공되었다. 우선, 달성군 가창면으로부터 흘러오는 대구천을 이용하여 대보·유보·덕토보를 개수하였고, 수성 봉화산 비탈에 약 15정보[14만 8760㎡]의 저수지를 만들어 수자원을 확보하였다. 저수지 총공사비는 16만 원으로 국고 보조 5만 원, 지방비 3만 원, 대구부 3만 원, 민간 몽리 지주 6만 원이었다. 저수지의 넓이는 16정[15만 8678㎡(4만 8000평)]이고, 수심은 26척[788㎝]이었으며, 몽리면적(蒙利面積)은 약 400정보[396만 6942㎡]였다. 대구부에서는 수성수리조합 저수지의 둘레와 주변을 길을 내고, 나무와 꽃 등을 심어 유원지로 만들어 식민 통치의 우수성을 선전하는 수단으로도 활용하였다.
[현황]
수성수리조합은 달성군 수성면 8개 동[상동, 식산동, 중동, 하동, 신천동, 황청동, 범어동, 파동]과 가창면 1개 동 소재의 약 370정보[366만 9421㎡]의 논을 관리하였다. 수성수리조합의 총면적 가운데 한인 소유가 3.11㎢, 일본인 소유가 0.40㎢, 프랑스인[천주교] 소유가 0.16㎢였다.
수성수리조합의 조합원은 모두 436명이었다. 이들은 한인 414명, 일본인 21명, 프랑스인 1명으로 구성되었다. 설립 당시 수성면의 부호인 진희규가 수성수리조합 조합장, 일본인 미즈사키 린타로가 수성수리조합 부조합장을 역임하였다. 미즈사키 린타로는 수성면 거주 일본인의 이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수성면지방개량조합의 조합장을 맡고 있었다.
[의의와 평가]
수성수리조합은 일제강점기에 대구 지역의 상수원 부족을 해결하는 데 일정 정도 이바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