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07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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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尹秉召 |
이칭/별칭 | 윤병소(尹秉昭)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혜린 |
출생 시기/일시 | 1887년 10월 12일 - 윤병소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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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30일 - 윤병소 경기도 시흥군 수암면 만세시위 참여 |
몰년 시기/일시 | 1919년 - 윤병소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윤병소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출생지 |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안석리 184 |
거주|이주지 | 경기도 시흥군 수암면 능곡리 182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경기도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윤병소(尹秉召)[1887~1919]는 1887년 10월 12일 태어났다. 본적은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안석리 184번지이다. 윤병소(尹秉昭)라고도 불렸다. 1919년 3월 30일 일어난 경기도 시흥군 수암면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하였다. 윤병소는 당시 경기도 시흥군 수암면 능곡리 182번지에 거주하였고, 1919년 3월 29일 이봉구(李鳳求)로부터 '3월 30일 대한독립만세를 부를 예정이니, 수암리 내 비립동으로 모이라'는 격문이 돌았다는 것을 들었다. 3월 30일 10시 경 수암면 내 18개리 주민 약 2,000여 명이 수암리 남쪽 비립동으로 모였다. 윤병소는 유익수(柳益秀) 등과 함께 군중의 선두에서 태극기를 흔들고, 군중을 인솔하여 수암리 읍내로 갔다. 이후 수암리 경찰관주재소 서쪽 밭에 모여 대형 깃발 2개를 세우고 각자 소형 깃발을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어 수암공립보통학교, 수암면사무소, 공자묘 앞으로 이동하여 만세시위를 벌인 후 자진 해산하였다. 일제가 주동자 검거에 나서면서 체포되어 1919년 5월 2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0월을 선고받았다. 1919년 사망한 것으로 추측된다.
[상훈과 추모]
경기도 시흥군 수암면 만세시위에 참여한 사실이 확인되어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