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14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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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鍵 |
영어공식명칭 | Kim Ge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정아 |
출생 시기/일시 | 1798년 - 김건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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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818년 - 김건 남항 선전관에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820년 10월 - 김건 정시 무과에 병과 215인으로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821년 - 김건 경흥부사로 부임 |
활동 시기/일시 | 1838년 - 김건 충청도수군절도사로 부임 |
활동 시기/일시 | 1848년 - 김건 삼도통제사로 부임 |
활동 시기/일시 | 1865년 - 김건 한성부좌윤에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868년 5월 - 김건 어영청 대장에 임명 |
몰년 시기/일시 | 1869년 - 김건 사망 |
성격 | 무관 |
성별 | 남 |
본관 | 해풍(海豊) |
대표 관직 | 어영청 대장 |
[정의]
경기도 화성시에 세거한 해풍 김씨 출신의 조선 후기 무신.
[가계]
본관은 해풍(海豊). 김면철(金勉喆)의 아들로서 숙부 김병철의 후사가 되었다. 김면철과 김병철의 부친은 김희(金熺)이다.
[활동 사항]
김건(金鍵)[1798~1869]은 1816년 12월 19세에 남항 선천에 뽑혔다. 남항이란 과거 시험을 거칠 필요 없이 조상의 공덕으로 인해 관직에 나갈 수 있는 것을 말하며, 선천은 무반 청요직으로 나갈 수 있는 관문이며 출세를 보장받는 천거를 의미한다. 1818년 남항선전관에 임명되었고, 1820년 10월 정시 무과에서 병과 215인으로 급제하였다.
1826년에는 춘당대 서총대 시사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거두어 상으로 품계를 올려 받았는데, 활쏘기 실력이 뛰어났다고 전한다. 이듬해인 1821년에 무겸선전관에 임용되었고, 곧 외방직인 경흥부사로 출사하였는데, 이는 고위 무신으로 승진하기 위해서는 외직이나 변방에서 일정 기간 근무하는 것이 조선 시대의 관례였기 때문이다.
김건의 이력 중 가장 눈길이 가는 부분은 수군 관련 부분이다. 김건은 충청도수군절도사를 시작으로 1848년과 1866년에는 삼도통제사에 임명되었는데, 현재 김건의 고문서에는 1848년의 임명장이 없지만 대신 1866년과 1867년에 삼도통제사로 임명된 교지가 남아있다. 삼도수군통제사 명단에 의하면 김건은 177대 통제사로서 1848년 8월~1851년 8월까지 근무하였고, 190대 통제사로서 1866년 1월~1868년 4월에 근무한 것으로 기록되어있다. 그리고 이 1866년의 부임을 재임이라고 표현해두었다.
1865년에는 한성부좌윤으로 근무하며 『제 3차 을축보』를 편찬하였다. 1868년 5월, 어영청 대장으로 임명되었고, 그 해 6월에는 형조판서에 올랐다.
[학문과 저술]
김건은 1865년(고종 2) 전국의 종친을 규합하고 문헌을 고증하여 『제3차 을축보』를 편찬하였다. 이는 1809년 기사보 이후 56년만의 일이라고 한다.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호곡리에 김건이 쓴 김병철의 묘표가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