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000399
한자 完州松廣寺大雄殿
영어공식명칭 Daeungjeon Hall of Songgwangsa Temple, Wanju
분야 문화유산/유형 유산,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송광수만로 255-16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전경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623년(인조 1)연표보기 - 완주 송광사 대웅전 완성
개축|증축 시기/일시 1707년(숙종 33) - 완주 송광사 대웅전 중건
개축|증축 시기/일시 1814년(순조 14) - 완주 송광사 대웅전 중건
개축|증축 시기/일시 1857년(철종 8) - 완주 송광사 대웅전 중건
문화재 지정 일시 1996년 5월 29일연표보기 - 완주 송광사 대웅전 보물 제1243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완주 송광사 대웅전 보물로 재지정
현 소재지 완주 송광사 대웅전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송광수만로 255-16 지도보기
성격 불전
양식 다포계 팔작지붕
정면 칸수 5칸
측면 칸수 3칸
소유자 송광사
문화재 지정 번호 보물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에 있는 조선시대의 송광사 중심 불전.

[위치]

완주 송광사 대웅전송광사 가람 중심에 있으며, 우화루가 정면에 있고 우측에 명부전, 좌측에 적묵당이 있는 4동 중정형의 북쪽에 위치한다.

[변천]

송광사 개창 비문 등의 기록을 살펴보면 송광사는 17세기에 창건된 것으로 보인다. 이 때 2층의 완주 송광사 대웅전을 비롯해 명부전, 천왕전, 정문 등의 건물이 건립되었다. 『시왕조성흘공기(十王造成訖功記)』[1640]에 따르면 대웅전은 1623년에 완성되었고 1638년(인조 16)에 후불화를 조성했으며 정문을 건립하는 불사가 이루어졌다고 기록되었다. 이미 지어진 송광사 명부전 안에 시왕을 조성, 봉안한 것은 1640년이고 천왕전에 천왕상을 조성한 것은 1649년(효종 1)이다. 또한 나한상을 추가 조성해서 대웅전에 봉안한 것은 1656년(효종 7)이며 이때로 개창 불사가 끝났다. 「대웅전중건상량문(大雄殿重建上樑文)」[1857]에 의하면 1707년에 삼건(三建), 1814년에 사창(四創), 1857년에 오건(五建)되는 등 수리 공사가 계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완주 송광사 대웅전은 중층 전각이었던 것으로 보이나 1814년 혹은 1857년 건물이 기울어져 단층으로 고쳐 지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형태]

완주 송광사 대웅전은 단층의 정면 5칸, 측면 3칸의 규모로 외3출목, 내3출목의 다포계 팔작지붕[우진각지붕 위에 맞배지붕을 올려놓은 형태로, 용마루와 내림마루, 추녀마루를 모두 갖추어 가장 화려하고 장식적인 지붕] 건물이다. 정면 3칸 중앙에 석가모니불, 좌측에 약사불, 우측에 아미타불을 봉안했고, 건물의 향은 동남향으로 했다. 기단은 화강석 다듬은 장대석을 사용한 이벌대 기단이고 양 측면과 배면은 화강석의 외벌대 기단이다. 초석[주춧돌]은 외진주와 내진고주의 경우 자연석 주초이고 활주 초석은 원형의 장초석이다. 기둥은 민흘림이 있는 원주이며 창호는 총 8개소에 설치되었다. 정면에는 칸마다 설치되었는데 어칸과 협칸은 하부에 궁판이 있는 이분합 격자문을 사용했고 퇴칸에는 궁판없는 이분합 격자창을 달았다. 처마는 겹처마이며 단청은 모로단청[부재 끝부분에만 문양을 넣고 가운데는 긋기로 마무리한 단청]으로 전체 해체보수 때 새롭게 그려 넣었다. 건물 내부는 우물반자와 빗반자로 구성했고 중앙칸의 우물반자에는 소란대를 사용했으며 용머리를 초각해 공간의 위계를 표현했고 물고기와 거북, 토끼, 염소, 게 등을 초각한 장식물을 반자틀에 철물로 고정했고, 빗반자에는 화려한 비천주악도[천인이 하늘을 날며 음악을 연주하는 모습과 춤추는 모습]가 그려져 있다. 내부 바닥은 우물마루로 짜여 있다.

[현황]

완주 송광사 대웅전은 평지가람과 같은 지면에 일주문, 금강문, 사천왕문을 지나 넓은 마당을 지나 일직선상에 놓여 있다. 1996년 5월 29일 보물 제124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완주 송광사 대웅전 좌측에 요사채가 있고 오른쪽에 명부전이 자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완주 송광사는 17세기 초반에 새롭게 창건된 사찰로 조선 후기 사원 건축사상 억불숭유 체제 안에서 건립된 특이한 사찰이다. 즉,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초반은 당시에 일어난 양란에 의해 대부분 사찰이 초토화되었고 그 결과 17세기 내내 불교사원의 재건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는 시기였다, 그런 분위기 가운데 재건 중창 등이 아닌, 창건되었고 그것도 왕실의 후원 아래 창건된 사찰로는 완주 송광사가 유일하다. 창건에 대해 인조의 숙부 의창군과 고모부인 신익성이 개창 비문을 짓고 당시 불교의 중건 중창에 큰 역할을 한 벽암대사와 그의 제자들이 동참해서 불사 진행을 이루었다. 완주 송광사 대웅전은 내부에 고주 4개를 측면 평주열보다 뒤로 후퇴시킨 후 후불벽을 조성했고 그 앞에 거대한 수미단을 설치해서 거대 삼세불을 봉안했다. 빗천장에 주악비천도를 그리는 등 매우 화려한 장엄을 이루고 있다. 거대 삼세불이 봉안된 것으로 건물은 2층 통층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완주 송광사 대웅전은 억불숭유라는 분위기 속에서 왕실의 후원을 받아 창건된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건물이며 2층 통층 건물이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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