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000402
한자 威鳳寺寮舍
영어공식명칭 A Temple Dormitory of Wibongsa Temple
분야 문화유산/유형 유산,역사/근현대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위봉길 53 위봉사 내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서지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76년 4월 2일연표보기 - 위봉사요사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69호로 지정
개축|증축 시기/일시 1977~1978년 - 위봉사요사 전체 해체보수공사
개축|증축 시기/일시 1989년 - 위봉사요사 연목 이상 해체수리
개축|증축 시기/일시 1994년 - 위봉사요사 실내 개조 공사-북측 익사의 부엌과 방 개조
개축|증축 시기/일시 2015년 - 위봉사요사 기와 번와 공사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위봉사요사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
현 소재지 위봉사요사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위봉길 53 위봉사지도보기
성격 불전(佛殿)
양식 익공계 단층 팔작지붕 건물
정면 칸수 8칸
측면 칸수 7칸
소유자 위봉사
관리자 위봉사
문화재 지정 번호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 위봉사에 있는 요사.

[개설]

위봉사요사는 건물 전면에 ‘관음전’이란 편액이 걸려 있지만 승려들의 생활공간이고 수행공간으로, 1976년 4월 2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6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위치]

전주-진안 간 26번 도로 소양면 소재지를 마수교에서 왼쪽으로 소양면 대흥리 송광사를 거쳐 위봉산성을 지나면 위봉사가 나온다. 위봉사요사위봉사 보광명전 앞마당 서쪽에 위치한다.

[변천]

위봉사요사의 창건 기록은 확인되지 않으나 1868년(고종 5) 포련선사가 60여 칸의 건물을 중수했다는 『극락전중수기(極樂殿重修記)』의 기록을 바탕으로 요사의 창건 시점을 짐작하고 있다. 1929년 조선불교중앙교무원이 발행한 『조선사찰31본산(朝鮮寺刹三十一本山)』에 수록된 위봉사의 전경 사진으로 위봉사요사의 배면과 남측면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지붕의 형태로 보아 평면 구성은 추가적인 증축 없이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원형이 잘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입면은 부분적으로 현재와 다른 점이 확인된다. 일제강점기 위봉사는 보석사(寶石寺)와 함께 전라북도 지역의 여러 말사를 관리하던 본사(本寺)로서 사찰의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사격(寺格)의 관리가 잘 이루어졌다. 1978년 보광명전 조사 당시 요사의 상태가 온전치 못해 1977년~1978년도 공사 자료를 보면, 지붕 전체를 해체하고 기둥과 인방을 교체하는 보수공사가 이루어졌다. 이후 1988년 승려 법중(法中)에 의해 내부공간의 변화가 이뤄졌는데 1989년에는 요사의 뒤편에 축대와 지하실을 설치하면서 연목 이상 해체수리를 실시했다. 1994년 북측 익사의 부엌과 방이 개조되었다. 2015년 5월에는 기와 전체를 교체하는 번와공사를 실시했다.

[형태]

위봉사요사는 정면 8칸 측면 7칸 규모의 익공계 단층 팔작지붕 건물로 工자형의 평면으로 독특한 평면과 다양한 지붕의 모습이 특징이다.

[현황]

위봉사요사의 기단은 전체적으로 자연석을 사용해 축조되었다. 건물이 있는 지반의 높이가 달라 기단의 높이차가 있다. 면석의 크기는 일정하지 않고 1~2단의 자연석을 허튼층으로 쌓았는데 대체로 면은 평탄한 편이다. 계단은 정면에 2개가 설치되었다. 초석은 자연석을 사용했고 기둥은 외진에는 원주를 사용하고 내진에는 각주를 사용했는데 일부 내진에서 원주가 사용되기도 했다. 위봉사요사는 정면 8칸, 측면 7칸으로 규모가 약 110여 평에 이르는 대형 요사이다. 평면의 구성은 본채를 중심으로 양쪽에 부속채[익사]가 붙은 工자형으로 중정 마당을 바라보며 동향하고 있다. 내부는 대중방[대방], 화주실, 승방, 부엌, 기타 부속실 등 다양한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중방은 공양 및 대중 공사(公事)가 이뤄지는 공간으로 정면 4칸, 측면 3칸의 규모로 전·후면으로 퇴를 구성하여 좌우의 익사를 연결하는 공간이다. 위봉사는 여기에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관음전’이란 편액을 달아 인법당(因法堂)의 성격을 띠고 있다. 대중방은 다른 공간보다 중요성이 있는 공간으로 전면을 장식하기 위해 기둥머리를 이익공으로 구성했다. 살미는 앙서형의 초제공과 수서형 이제공이 마주하는 형태이다. 대방의 남쪽 익사는 전면에 승방을 두어 일반 승려들이 거처하며, 유행(遊行) 승려와 기타 방문객이 묵어갈 수 있도록 소규모 방으로 분할했다. 북쪽 익사에는 공양주방을 두었는데 대방 측면에 바로 접해서 대중에 대한 식사 공양이 편리하도록 구성되었다. 또한 북쪽 익사 전면에 큰 마루방이 있는데 이 방은 필요에 따라 세 칸을 통합해 사용한다. 각 방들은 툇마루 또는 쪽마루가 부설되었다. 대방의 양쪽 익사부분의 공포는 민도리계를 사용했다. 지붕은 관음전 부분과 만나는 지점은 회첨처마가 형성되고 외부로 돌출된 부분은 추녀와 선자를 가진 처마를 구성한 형태로 전체적인 외형은 팔작집의 처마 구성을 보인다. 단청은 간단한 형식의 긋기단청으로 마감했다. 대중방의 정면 툇마루에는 ‘관음전’과 ‘위봉사’ 2기의 편액이 걸려 있다. ‘위봉사’ 편액의 글씨는 해강 김규진[1868~1933], 그림은 죽농 서동균[1902~1978]의 작품이다. 1980년대 사진을 살펴보면, 그림의 바탕면이 흰색으로 현재와는 다른데 기존 것을 바탕으로 새롭게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관음전’ 편액은 목우 윤기성의 글씨로 1998년 조성했다.

[의의와 평가]

위봉사요사의 工자형 평면은 대형 요사에서 다양한 공간을 효율적으로 구성하기에 적합한 평면으로, 서울·경기 지역의 대형요사 가운데 서울 흥천사와 남양주 흥국사 등이 이러한 평면이며, 전·후면으로 마당 구성이 가능하고, 후면으로의 확장 또한 쉬운 장점이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