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05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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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池里朴孝鎭旌閭 |
영어공식명칭 | Monument Gate for Park Hyo-jin in Sinji-ri |
분야 | 문화유산/유형 유산,역사/근현대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신지리 용복마을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최범호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877년 - 신지리 박효진 정려 명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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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신지리 박효진 정려 -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신지리 용복마을 안 |
성격 | 효자각 |
양식 | 홑처마 팔작 기와지붕 |
정면 칸수 | 1칸 |
측면 칸수 | 1칸 |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신지리 용복마을에 있는 개항기 박효진의 정려.
[개설]
박효진은 밀양박씨로 자는 문중(文中)이다. 아버지는 달해(達海)이고 자는 사즙(士楫)이다. 어머니는 김해김씨이다. 아버지가 병환으로 오랫동안 고통스러워하자 박효진이 항상 탕약과 원하는 음식을 손수 마련했는데 하루는 꿩고기를 원해서 하늘에 비니 꿩이 집으로 날아와 구할 수 있었고, 또 신인으로 변한 호랑이의 안내로 산삼을 캐서 병 간호를 극진히 해 천수를 누렸다. 1877년(고종 14)에 좌승지 벼슬과 효자 정려를 제수받았다. 박효진의 아들 박경호(朴慶鎬)도 순효한 천성으로 아버지의 병을 간호해 효자로서 1888년(고종 25) 10월에 정려를 내렸다.
[위치]
완주군 용진읍 신지리 용복마을은 전주-대전 간 17번 국도 봉동읍 입구에서 외곽도로로 진행하다가 오른쪽으로 마을이 나오는데 신지리 박효진 정려는 용복마을 안에 있다.
[변천]
신지리 박효진 정려각의 정려기[旌門記]는 1924년에 박영학(朴永學)이 글을 짓고 경주 이봉우(李奉雨)가 썼다. 1890년(고종 27)에 관찰사 겸 순찰사(觀察使兼巡察使)에게 보낸 관문(關文)이 있다.
[형태]
신지리 박효진 정려각의 크기는 정면 1칸[230㎝], 측면 1칸[210㎝]이며 팔각지붕 형태로 되어 있다. 편액의 크기는 170×40㎝이며 ‘효자 증통정대부 승정원 좌승지 박효진지려(孝子 贈通政大夫 承政院 左承旨 朴孝鎭之閭)’라고 쓰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