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06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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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誠中 |
영어공식명칭 | Lee Seong-jung |
이칭/별칭 | 서암(恕菴),정순(靖順) |
분야 |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장순순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구미리 구호서원에 배향된 문신.
이성중(李誠中)[1330~1411]의 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서암(恕菴)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핵(李翮), 할아버지는 이세기(李世基), 아버지는 월성부원군(月城府院君) 이청(李蒨)이며, 어머니는 순창박씨이다. 이경중(李敬中), 이배중(李培中), 이달충(李達衷)과 형제다. 부인은 창원인(昌原人) 황하연(黃河衍)의 딸이다. 아들이 셋인데 이원(李援)·이부(李扶)·이휴(李携)이다.
이성중은 1347년(충목왕 3) 병과 2등으로 문과에 급제하여 밀직제학(密直提學) 등을 지냈다. 이때 이성중이 아들 이휴를 통해 가보로 내려오는 보검을 이방원에게 바쳤다.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자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이 되었고, 1396년(태조 5) 축성도감제조(築城都監提調)로 있을 때 축성한 것이 견고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하옥되었다가 바로 석방되었다. 이후 정헌대부(正憲大夫), 판공안부사(判恭安府事)를 거쳐 1411년 검교좌정승(檢校左政丞)에 이르렀다. 이성중은 익제(益齊) 이제현(李齊賢)의 문하에 출입하면서 목은(牧隱) 이색(李穡)과 교류하였다.
이성중은 조선 태종 때 시호를 정순(貞順)으로 받았다. 완주군 봉동읍에 있는 구호서원(龜湖書院)에 배향되었다. 구호서원은 1730년(영조 6)에 지역의 유림이 박상충(朴尙衷)·이성중(李誠中)·박은(朴訔)·송유저(宋有著)·임사수(林士壽)·박소(朴紹)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고 위패를 모신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