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000652
한자 宋成龍
영어공식명칭 Song Seong-ryong
이칭/별칭 원서(元瑞)
분야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송만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780년(정조 4)연표보기 - 송성룡 출생
출생지 송성룡 출생지 -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지도보기
묘소|단소 송성룡 묘소 - 충청남도 회덕(懷德)군
성격 문관
성별 남자
본관 은진(恩津)
대표 관직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현감(縣監)

[정의]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출신의 문신.

[가계]

송성룡(宋成龍)[1780~?]의 자는 원서(元瑞), 본관은 은진(恩津)이다. 아버지는 송경한(宋景漢), 할아버지는 송항진(宋恒鎭), 증조할아버지는 송재후(宋載厚), 외할아버지는 의금부도사(義禁府道事)를 지낸 김필태(金必泰)이다. 그리고 장인은 국사영(鞠思永)이다.

[활동 사항]

송성룡은 33세 때인 1812년(순조 12) 정시문과(庭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한 후 정언(正言), 현감(縣監)을 지냈다. 정언으로 있을 때인 1830년(순조 30) 당시의 왕세자가 각혈(咯血)하더니 얼마 후 세상을 떠났다. 왕세자란 익종(翼宗)으로 추존(追尊)된 이영(李旲)을 말하는 것으로, 왕세자의 병 치료에 관여한 자들의 처벌을 건의했다. 송성룡은 특히 약제(藥劑)를 지어 올린 의관(醫官) 이명운(李命運)과 내국제조(內局提調) 홍기섭(洪起燮) 등의 처벌을 요구했다. 또한 의약(醫藥)에 익숙하지도 않으면서 약제 처방에 관여한 김로(金鏴)의 탄핵을 청했다. 그러나 순조는 오히려 송성룡의 간언이 지나치다고 생각해서 송성룡을 앞으로 대간(臺諫)과 시종(侍從)에 등용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시골로 내쫓아버렸다. 송성룡이 그 벌에서 풀려난 해는 1832년(순조 32)이었다.

[묘소]

송성룡의 묘소는 충청남도 회덕(懷德)군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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