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0670 |
---|---|
한자 | 宋湖 |
영어공식명칭 | Song Ho |
분야 |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송만오 |
몰년 시기/일시 | 1592년(선조 25) - 송호 사망 |
---|---|
출생지 | 송호 출생지 -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
성격 | 무관 |
성별 | 남자 |
본관 | 여산(礪山) |
대표 관직 | 공조참의(工曹參議) |
[정의]
조선 전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무인.
[가계]
송호(宋湖)[?~1592]의 본관은 여산(礪山)이다. 송공복(宋公復)의 7세손으로 아버지는 송계상(宋繼商)이다.
[활동 사항]
송호는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伊西面) 출신으로, 조선 초기에 판결사(判決事)를 지낸 송공복의 후손이다. 송호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충의심이 투철하여 지용(智勇)을 겸비(兼備)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 국가가 위기에 처하자 송호는 국가와 백성을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백의종군(白衣從軍)을 결심하였다. 이후 왜적(倭賊)을 상대로 여러 차례 싸워 혁혁한 전공(戰功)을 세웠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조정에서는 송호가 비록 무인(武人)이지만 치세(治世)에 크게 쓰일 수 있다고 판단하여 공조참의(工曹參議)에 임명하였다. 공조참의로 있으면서 송호는 많은 치적(治籍)을 쌓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