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06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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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張應秋 |
영어공식명칭 | Jang Eung-chu |
분야 |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화월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장순순 |
출생 시기/일시 | 1566년(명종 21) - 장응추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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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93년(선조 26) - 장응추 양산 삼랑포에서 전투 |
몰년 시기/일시 | 1593년(선조 26) - 장응추 사망 |
출생지 | 장응추 출생지 -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화월리 |
묘소|단소 | 장응추 묘소 -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운곡리 로 추정 |
성격 | 무관 |
성별 | 남자 |
본관 | 결성(結城) |
대표 관직 | 훈련원주부(訓練院主簿)|충익위장(忠翊衛將) |
[정의]
조선 전기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출신의 무신.
[가계]
장응추(張應秋)[1566~1593]의 본관은 결성(結城)이고, 고산현[현 완주군 화산면 화월리] 출신이다. 결성군(結城君) 장하(張夏)의 후손이며, 손자는 충익위(忠翊衛) 장운봉(張雲鳳)이다. 14세 손자가 장인봉(張仁鳳)이다.
[활동 사항]
장응추는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주부(訓練院主簿)와 충익위장(忠翊衛將)을 지냈다. 1592년(선조 25)에 발발한 임진왜란은 1593년 1월 평양성전투 이후 일본군은 한양으로 철수했다가 남쪽으로 이동하여 경상도 양산(梁山)과 언양(彦陽) 등지에서 진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1593년 6월에 장응추는 창의사(倡義使)로 기장감무 충의공(忠懿公) 박면(朴沔)과 함께 양산과 삼랑포(三浪浦)에서 군대를 연합하였다. 당시 일본군보다 숫자가 현저히 적었지만, 군사 5백 명과 갈대밭에 숨어 있다가 야음을 틈타 적군을 공격하였다. 이 전투에서 양쪽 모두 수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으며, 여기에서 장응추도 전사하였다.
[묘소]
장응추는 남겨진 옷을 수습하여 운곡(雲谷)에 안장했다. 운곡은 현재 완주군 화산면 운곡리로 추정된다.
[상훈과 추모]
금재(欽齋) 최병심(崔秉心)이 장응추의 묘갈명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