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06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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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汝忠 |
영어공식명칭 | Jo Yeo-chung |
분야 |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장순순 |
활동 시기/일시 | 1593년(선조 26) - 조여충 행주산성 전투에 참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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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593년(선조 26) - 조여충 사망 |
출생지 | 조여충 출생지 -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
성격 | 무신 |
성별 | 남자 |
본관 | 평양(平壤) |
대표 관직 | 주부(主簿) |
[정의]
조선 전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무신.
[가계]
조여충(趙汝忠)[?~1593]의 본관은 평양(平壤)이며, 고산현[현 완주군 고산면] 출신이다. 삼중대광(三重大匡) 조인규(趙仁規)의 후손이며, 병사(兵使) 조을정(趙乙鼎)의 현손이다.
[활동 사항]
조여충은 평소 말과 활을 익혀 무과에 급제하여 주부(主簿)[종6품]를 지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초기에 일본군의 빠른 진격에 속수무책이던 전세는 이순신이 이끄는 수군과 전라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봉기한 의병들의 활약으로 역전되기 시작했고, 1593년 1월 평양성전투에서 조명연합군(朝明聯合軍)이 승리하였다. 한양으로 집결하는 일본군을 쫓아 조선과 명나라의 군대가 모이기 시작했고, 전라감사 권율(權慄)도 전라도에서 군사를 모아 한양도성 수복을 위해 북상하다가 행주산성에서 일본군의 공격을 막아내었다. 조여충은 권율의 부름을 받고 가동(家僮) 50여 명을 이끌고 행주산성으로 들어가서, 매복하여 일본군을 공격하는 등 활약을 하다가 전투 중 탄환에 맞아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조여충은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녹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