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07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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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梁七星 |
영어공식명칭 | Yang Chil-seong |
이칭/별칭 | 야나가와 시치세이[梁川七星],KomArudin |
분야 | 성씨·인물/근현대 인물,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삼례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박노석 |
출생 시기/일시 | 1919년 - 양칠성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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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45년 - 양칠성 인도네시아에서 독립운동 |
몰년 시기/일시 | 1949년 - 양칠성 사망 |
출생지 | 양칠성 출생지 -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삼례리 |
활동지 | 양칠성 활동지 - 인도네시아 |
묘소 | 양칠성 묘소 -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
성격 | 인도네시아 독립운동가 |
성별 | 남자 |
[정의]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삼례리 출신의 인도네시아 독립운동가.
[개설]
양칠성(梁七星)[1919~1949]은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삼례리 출신의 인도네시아 독립운동가이다. 양칠성의 일본식 이름은 야나가와 시치세이[梁川七星]이며, 인도네시아어로는 KomArudin이다.
[가계]
양칠성의 작은아버지는 양금암(梁金岩)이며, 숙모는 최은동(崔銀東)이다. 사촌은 양남수이다.
[활동 사항]
양칠성은 태평양전쟁 중이었던 1942년에 일본 남방군에 입대해서 1945년까지 자와섬 포로수용소의 감시원으로 있었다. 1945년 이후 조선에 돌아가지 않고 인도네시아에 남아서 네덜란드의 재식민지화 정책에 대항하던 인도네시아 독립군에 가담해서 활동했다. 1948년 11월 부대원들과 산에서 게릴라전을 모의하던 도중, 네덜란드군에 체포되어 1949년 8월 10일 주민들이 보는 앞에서 총살되었다. 양칠성의 공적은 양칠성이 사망한 지 26년 뒤인 1975년 11월에 인도네시아군의 고위 장성이 된 옛 독립운동 동료들의 노력으로 세상에 알려졌으며, 인도네시아 정부는 양칠성을 외국인 독립 영웅으로 공인했다.
[묘소]
양칠성의 묘소는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 위치한 칼리비타 국립묘지에 있다. 자카르타에 있는 묘비에는 ‘KOMARUDIN YANGCHILSUNG, KOREA’라고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