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수재수득록』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001347
한자 三修齋隨得錄
영어공식명칭 Samsusaesudeukrok (Collection of Jeon Gyeong-pyo's poetry and prose works)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문헌/전적
지역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김봉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985년연표보기 - 『삼수재수득록』 간행
소장처 전북대학교 도서관 -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백제대로 567
성격 문집
저자 전경표(全景杓)
간행자 남도현(南道鉉)|국길호(鞠吉鎬)
권책 4권 1책
행자 12행 25자
규격 26.7×19.5㎝
어미 상2엽 화문어미
권수제 삼수재수득록(三修齋隨得錄)
판심제 삼수재수득록(三修齋隨得錄)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출신인 전경표의 시문집.

[저자]

전경표(全景杓)[1854~1944]의 자는 회중(晦仲), 호는 삼수재(三修齋)이며, 본관은 관성(管城)이다.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화월리 신화평 출신이다.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조헌(趙憲)을 따르다 순절(殉節)한 설(渫)의 11세손이며, 부친은 전규한(全規漢), 모친은 장임추(張任樞)의 딸이다.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과 심석(心石) 송병순(宋秉珣)의 문인이며, 장중하고 학문이 깊었다. ‘삼수(三修)’라는 당호는 스승인 송병순이 『주역』의 「계사전(繫辭傳)」에서 말한 바 “군자는 몸을 편안히 한 뒤에 동하며, 마음을 화평히 한 뒤에 말하며, 사귐을 정한 뒤에 구하여야 온전하다”라는 세 가지를 닦으라는 의미로 내려준 것이다. 신화평(新花坪)에서 강학에 힘쓰는 한편 명승과 유적지를 찾아 시가(詩歌)로 울분을 달래기도 했다.

[편찬/간행 경위]

전경표 사후 40년 뒤인 1985년에 문인(門人) 남도현(南道鉉), 국길호(鞠吉鎬) 등이 유고를 모아 『삼수재수득록(三修齋隨得錄)』 4권 1책을 냈다. 서문은 이희승(李熙昇), 발문은 손자인 전우상(全遇常)이 지었다. 전우상은 부친이 1944년 타계하고 1950년 한국전쟁으로 형제들이 흩어짐에 따라 간행하지 못하다가, 남도현, 국길호 등 문인들의 도움으로 문집을 간행하였다.

[형태/서지]

『삼수재수득록(三修齋隨得錄)』은 4권 1책의 석판본이다. 사주쌍변(四周雙邊)[지면의 둘레를 두 개의 검은 선으로 두름]이며, 계선(界線)[본문의 각 줄 사이를 구분하는 선]이 있다. 반엽은 12행 25자이며, 주는 쌍행이다. 어미(魚尾)[책을 펼쳤을 때 중앙에 물고기 꼬리 문양의 접지표]는 상향이엽화문어미(上向二葉花紋魚尾)이다.

[구성/내용]

『삼수재수득록(三修齋隨得錄)』은 권1과 권2는 523수의 시가 실려 있다. 권3은 서(書), 서(序), 기(記), 발(跋), 축문(祝文), 제문(祭文), 행장(行狀), 행록(行錄), 묘갈(墓碣), 묘표(墓表), 상량문(上樑文), 통문(通文), 격문(檄文) 등이다. 권4는 부록이다. 「삼수재기(三修齋記)」는 스승인 송병순이 전경표에게 준 글이며, 「열락계좌목(悅樂契坐目)」, 「계규(契規)」, 「상읍례홀기(相揖禮笏記)」, 「강석문답(講席問答)」은 전경표가 스승 송병순과 열락계를 맺어 강학 활동을 한 자료이다. 「삼수재수득록발(三修齋隨得錄跋)」에 이어 기재된 「추모계좌목(追慕契坐目)」은 전경표의 문인들로서 특히 문집 간행과 관련된 인물들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삼수재수득록(三修齋隨得錄)』은 전라북도 지역에서 연재 송병선 학맥의 활동 내용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시를 통해서 어떻게 강학 활동을 전개하였고, 어떠한 인물들과 교유하면서 연재학맥을 계승해 갔는가를 파악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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