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001380
한자 李愚誠
영어공식명칭 Lee Woo-sung
분야 성씨·인물/근현대 인물,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구와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희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5년연표보기 - 이우성 출생
몰년 시기/일시 1948년연표보기 - 이우성 사망
출생지 이우성 출생지 -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구와리 지도보기
학교|수학지 삼례초등학교 -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후정로 30[후정리 37-2]지도보기
학교|수학지 전주교육대학교 -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서학로 50[동서학동 128]
묘소 이우성 묘소 -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구덕리 산143-1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남자
본관 전주(全州)
대표 경력 농우회 간부|삼례소작쟁의 주도|3·1투쟁 준비회 조직

[정의]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구와리 출신 독립운동가.

[가계]

이우성(李愚誠)[1905~1948]의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괴하(槐下)이다. 아버지는 이현신(李顯新)이다.

[활동 사항]

이우성은 삼례공립보통학교[현 삼례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전주도립사범학교[현 전주교육대학교] 특과 2부 과정을 수료하고, 1926년부터 1930년까지 전라북도 내 장수공립보통학교(長水公立普通學校) 및 임피공립보통학교(臨陂公立普通學校) 훈도(訓導)로 근무하였다. 이우성은 각 리에 농우회(農友會)를 조직해 일제 수탈에 저항하는 농민운동을 펼치다가 교직에서 파면되었다. 이후 농우회 간부로 활동하면서 1930년 삼례소작쟁의를 주도하는 등 농민운동을 주도하였다. 1932년에는 ‘3·1독립만세운동일’을 기념하는 대규모 만세운동을 위한 ‘3·1투쟁 준비회’를 결성하여 농민대표로 선출되어 대규모 만세운동을 준비하다가 1932년 2월에 발각되어 일경에 체포되었다. 1934년 3월 조선총독부 전주재판소는 이우성에게 「보안법」 및 「치안유지법」 위반죄를 적용하여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하였다. 갖은 고문을 받다가 풀려난 이우성은 석방되자마자 지하 독립운동을 벌이다 조선총독부의 요시찰인으로 감시를 받는 상황에서 해방을 맞이하였으며, 1948년 43세로 사망하였다.

[묘소]

이우성의 묘소는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구덕리 산143-1에 있다.

[상훈과 추모]

이우성은 2018년 국가보훈처에서 제79주년 순국선열의 날을 맞이하여, 이우성의 일제의 국권침탈에 항거하여 민족자존의 가치를 높이고, 독립운동의 위업을 기리어 ‘건국헌정 애족장’을 포상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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