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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000350
한자 伊藤農場
영어공식명칭 Ideung Farm
이칭/별칭 이등도변기업조합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지명/시설
지역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임혜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관|개장 시기/일시 1906년 - 이등도변기업조합 개설
개관|개장 시기/일시 1907년연표보기 - 이등농장 개설
개칭 시기/일시 1917년연표보기 - 이등도변기업조합에서 이등농장으로 개칭
최초 설립지 이등농장 -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지도보기
주소 변경 이력 이등농장 - 전라북도 익산시 춘포면 덕실리
성격 농장

[정의]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완주군에 일본인이 설립한 농장.

[개설]

이토 초베에[伊藤長兵衛][1868~1941]는 고율의 소작료 수취를 목적으로 1906년 전라북도 완주 지역에 농장을 개설했다. 이등농장(伊藤農場)의 소유지는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면을 중심으로 완주군 일대와 익산군[전라북도 익산시]에 걸쳐 있었고 사무소는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면에 있었다.

[건립 경위]

농장주 이토 초베에는 시가현[滋賀縣]에서 주로 면직물과 마직물을 판매하는 포목상이었는데 러일전쟁 후 이토 초베에 상점[伊藤長兵衛商店]이 조선에 상품의 판로를 연 것이 계기가 되었다. 조선에서 농장을 개설할 목적으로 1906년 먼저 전라남도 목포와 광주 일원, 전라북도 평야 지역을 시찰하고 와타나베 타메키치[渡辺爲吉]와 함께 이등도변기업조합(伊藤渡辺起業組合)을 설립했다.

[변천]

이등도변기업조합의 조합원은 이토 초베에와 와타나베 타메키치 2명이었고 출자금은 각각 4만 엔[円], 1만 엔[円]이었다. 이 출자금으로 1907년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면 신금리[현 삼례읍 신금리]와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면 석전리[현 삼례읍 석전리] 논 400여 두락과 밭 80여 두락을 매수해 이등농장을 설립했다. 이등농장이 개설되던 당시는 의병의 활동이 활발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자리 잡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1907년 11월에 한국인[의병인지 확실하지 않음]의 습격으로 직원 1명이 살해되고 창고가 소실되었으며 상품과 현금이 약탈되는 일이 있었다. 그래서 사무실을 익산헌병분대가 주둔하고 있는 익산군 춘포면 대장촌[현 전라북도 익산시 춘포면 덕실리]으로 옮겼다가 1911년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면으로 돌아왔다. 1917년 와타나베 타메키치가 사망해 조합 운영이 어려워졌으므로 조합을 해산하고 이토 초베에가 단독으로 운영하는 개인 농장이 되었다.

[구성]

이등농장은 전북평야[호남평야]에 농장을 개설한 일본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늦게 개설되었다. 그러나 이등농장 소유지는 비교적 일찍 전북평야에 농장을 개설했던 일본인 농장과 달리 수리 안정성이 높아 농장을 경영하는데 따르는 위험 부담이 적었다. 이등농장 소유지는 1918년 254.8정보[2,526,942㎡], 1925년 383정보[3,798,347㎡], 1936년 490정보[4,859,504㎡]로 꾸준히 확대해 나감으로써 전라북도 완주 지역의 대표적인 일본인 농장이 되었다. 이등농장은 소작료 수입 외에도 소작인들에게 비료대금을 빌려주거나 기타 대부를 해주고 얻는 수입도 상당했다. 농장주는 일본에 거주하면서, 농장의 주임이 월보나 보고서로 현황을 보고하고 주요 현안에 대해서는 편지를 이용해서 지시하는 형태로 농장을 운영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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