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000353
한자 全益農場
영어공식명칭 Jeonik Farm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지명/시설
지역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임혜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23년 - 전익농장 소작쟁의 발생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29년 12월 - 전익농장 소작쟁의 발생
최초 설립지 전익농장 -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지도보기
성격 농장

[정의]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에 이봉승이 설립한 농장.

[개설]

전익농장은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에 사무소를 둔 농장으로 전라북도 완주군, 전라북도 익산시에 소유지를 두고 있었으며, 농장주 이봉승은 농장 외 경영에도 참여했다.

[건립 경위]

전익농장 설립 당시 농장주 이봉승의 아버지 이석우(李錫禹)가 화순군수(和順郡守)를 역임했다고 하는 기록 외에는, 전익농장 개설 이전 사실 관계를 확인할 만한 자료가 없다. 따라서 농장 설립과 관련해서 자세한 경위는 알 수 없다.

[변천]

전익농장 소유지는 1918년 271정보[2,687,603㎡]였는데 1930년 345정보[3,421,488㎡], 1936년 506정보[5,018,182㎡]를 정점으로 해서 1938년 83.3정보[826,116㎡]로 급감되었다. 1930년 소작쟁의의 원인이었던 농장주의 채무 관계 때문에 소유지를 정리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현황]

1936년 당시 전익농장의 소유지는 답[논] 456정보[4,522,314㎡], 전[밭] 50정보[495,868㎡], 합계 506정보[5,018,182㎡]이며 소작인 800여 명을 직원 2명, 사음[마름] 10명이 관리했다.

[전익농장 소작쟁의]

1922년, 1923년 전익농장에서는 소작인들에게 소작료 보증조(保證租)라는 명목으로 도조(賭租) 한 섬에 벼 한 말씩을 거둔 일이 있었다. 이에 소작인 1백여 명은 연서해서 조선총독부에는 탄원서를, 도지사에게는 진정서를 제출했고 당국은 조합비 수납 중지 명령을 내렸다. 다시 1929년 12월 중순경에 천여 명 소작인에게 소작료 보증금으로 두락 당 상답 10원, 중답 5원, 하답 3원씩 납부하라고 지시하고, 만일 보증금을 납부하지 못하는 소작인은 그 소작권을 이전하겠다고 했다. 이에 소작인들은 먼저 군에 진정함으로써 당국에서 중지명령이 있었지만, 전익농장에서는 미납자의 소작권을 이동하고 현금도 3천여 원을 징수했다. 그러자 소작인 백여 명이 연서해서 조선총독부에 탄원서를 제출하고, 계속해서 도지사에게 진정서를 제출하기도 했지만 해결되지는 않았다. 농장주에게는 55만 원의 채무가 있었는데 그 이자를 납부할 수 없었으므로 소작인들에게서 충당하려고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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