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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 자위대의 송광전투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000366
한자 松廣自衛隊-松廣戰鬪
영어공식명칭 Songgwan Battle of the Songgwan Self-Defense Forces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윤상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50년 10월 20일연표보기 - 송광 자위대의 송광전투 발생
발생|시작 장소 송광 자위대의 송광전투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지도보기
성격 빨치산 소탕 작전
관련 인물/단체 이수돈|김덕영|이성엽

[정의]

한국전쟁 당시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에서 조직된 송광 자위대가 빨치산들을 격퇴하고 송광사를 수복한 전투.

[개설]

한국전쟁 당시 전라북도 완주군이 국군에게 수복된 이후에도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송광사는 빨치산들에게 점령되어 있었다. 이수돈은 송광 자위대를 조직해 11명의 대원으로 수백 명 빨치산들과 싸워 송광사를 수복했다.

[역사적 배경]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에게 점령을 당했던 완주군은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해 1950년 9월 28일 국군에게 수복되었다. 퇴로가 끊긴 북한군은 지리산, 덕유산, 백운산 등지로 숨어들어 빨치산이 되었다.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에 있는 송광사는 미수복 지역으로 빨치산들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고 있었다.

[경과]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송광에 거주하는 이수돈은 소양면 치안대장으로 임명해서 빨치산 토벌작전을 펼치고자 했다. 이수돈은 지대장 김덕영 등 11명으로 이루어진 송광 자위대를 이끌고 빨치산 토벌작전에 나섰다. 1950년 10월 20일 새벽 4시경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 뒷산과 오른쪽 종남산에 빨치산이 출몰했다. 11명의 송광 자위대원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토치카에서 적을 사살했다. 이성룡 부대장은 다리에 부상을 당하면서도 굴하지 않고 수류탄을 들고 토치카에 올라온 적을 사살했다. 이렇게 몇 시간 동안 목숨을 걸고 싸우자 점차 날이 밝아왔다. 이때 동쪽에서 국군이 지원사격을 해오니 빨치산들은 모두 퇴각했다. 이때 쳐들어온 빨치산은 1,800여 명이며 희생자는 400여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송광 자위대는 한 명의 전사자도 없이 부상자만 3명이었다.

[결과]

송광 자위대의 목숨을 건 전투 결과 송광사가 수복되었다.

[의의와 평가]

송광 자위대의 송광전투는 한국전쟁 당시 후방에서 주민들로 구성된 유격대를 조직해 빨치산 소탕작전에서 전과를 올렸다는 데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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