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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000751
한자 柳志明
영어공식명칭 Yu Ji-myeong
분야 성씨·인물/근현대 인물,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농소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임혜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1년(고종 17)연표보기 - 유지명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08년 - 유지명 체포 탈주
몰년 시기/일시 1909년연표보기 - 유지명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77년연표보기 - 유지명 독립장 추서
출생지 유지명 출생지 -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지도보기
성격 의병
성별 남자

[정의]

개항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의병장.

[개설]

유지명(柳志明)[1881~1909]은 1907년 스스로 의병대장이라 칭하며 의병을 모집하고 군자금을 확보해서 의병대를 조직했다. 1907년 9월 22일 전라북도 용담군 건무리에서의 전투를 시작으로 여러 차례 전과를 올렸으나 1909년 일본군 헌병에 체포되어 교수형을 받고 순국했다.

[활동 사항]

유지명은 1907년 9월 초순경부터 스스로 창의대장 또는 삼남의병대장이라 칭하고 삼남의병대장의 인장이 찍힌 의병모집 격문 1통과 의병 계칙(戒飭) 기재한 문서 2부를 만들어 게시하고 의병 수백 명을 모집했다. 그리고 총 수백 정을 확보하고 각 부서를 정했다. 또한 군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호남의 부호인 김회음(金會音)과 이성순(李聖順) 외 수십 명에 대해서 도조 수백 석을 보관해 둘 것을 내용으로 하는 문서를 만들어서 통고했다. 그렇게 군량 징발의 준비를 마친 후, 때로는 수십 명 또는 수백 명의 부하를 인솔하고 전라북도 용담군, 고산군 및 충청남도 은진군 등지에서 활약했다. 1907년 9월 22일 용담군 건무리에서 일본군과 교전한 것을 비롯해 여러 차례에 걸쳐서 용담·고산·은진 일대에서 일본 보병·기병·헌병 등과 접전, 전과를 올렸다. 10월 3일 밤 유지명은 부하 정성일(丁成一)·김치삼(金致三) 등 수십 명을 이끌고 심상의, 노원섭 양 의병대와 합세해 금산읍을 습격, 일본군 수비대를 격파한 후 일본인 3명을 죽이고 9명에게 부상을 입혔으며 우편취급소와 세무소, 일본인 가옥 9동을 소각하고 양총 2정과 탄환 등을 노획하는 전과를 올렸다. 1908년 12월 24일 윤병오(尹炳五)라는 사람이 의병을 사칭하고 겁탈·강간을 일삼아 의병의 명예를 실추시키므로 타일렀으나 받아들이지 않으므로 군기를 확립하고 민심을 수습시키기 위해서 부하 유치복(柳致福)으로 하여금 총살하도록 했다. 유지명은 1908년 7월 13일 일본군 헌병에게 체포되었으나 탈주해서 몸을 피신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시 의병 활동을 하다가 1909년 1월 23일 헌병에게 다시 체포되어 3월 22일 광주 지방 재판소에서 교수형을 선고받았다. 항소했으나 그대로 형이 확정되어 교수대에서 사형 순국했다.

[상훈과 추모]

유지명은 1977년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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