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000357
한자 獨立運動
영어공식명칭 Independence Movement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북도 완주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임혜영

[정의]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완주군에서 조선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일어난 항일 운동.

[개설]

조선이 일본에 강점된 이후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를 극복하기 위해 전라북도 완주 지역에서 항일 독립운동이 전개되었다.

[완주 지역 3.1운동]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 출신인 김병학은 1919년 3월 13일 전주 장날을 이용해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했다. 신흥학교생이던 김병학은 학교 지하실에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제작·인쇄하면서 만세시위에 필요한 준비를 진행했다. 김병학은 신흥·기전학교 학생들과 함께 거사 당일인 1919년 3월 13일, 채소 부대로 위장한 가마니 속에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넣어 남문 장터까지 무사히 운반했으며, 정오 무렵 남문에서 울려 나오는 인경소리를 신호로 일제히 행동을 개시했다. 천도교·기독교인 및 신흥학교·기전여학교 학생 등 150여 명은 남문시장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 만세를 고창했다. 이때 김병학 등은 시민들에게 「독립선언서」를 배포했으며, 기전여학교 학생들은 태극기를 나눠주었다. 전주읍내에서 먼저 시작된 만세운동은 전라북도 완주군 내로 퍼져나갔다. 1919년 3월 17일에는 전라북도 완주군 초포면 송전리 들판에서, 1919년 3월 21일에는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장기리 장터에서, 1919년 3월 24일에는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삼례리 장터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학생만세운동]

1930년 2월 삼례공립보통학교[현 삼례초등학교] 학생과 영신학교 학생들은 “전 조선에 구속된 학생을 석방하라”라는 구호를 내걸고 14일 만세를 부르기로 계획했으나 사전에 경찰에 발각되었다. 이 일로 인해 만세를 부를 때 사용하려고 준비해 둔 태극기 백 여 매는 압수당하고 영신학교생 10명과 삼례보통학교생 6명이 검거되었고 각각 29일에서 5일까지 구류 처분을 받았다. 그런데도 영신학교생 4명은 다시 계획을 세웠다. “동정(同情) 동감(同感) 만세”라는 문구를 쓴 기를 들고 삼례공립보통학교 정문에서 학생들을 기다렸으나 나오지 않자, 4명 만이 서로 기를 나누어 들고 만세를 불렀다. 삼례경찰관 주재소에서 전주서로 연락해 만세를 부른 학생들은 모두 전주로 호송되었다.

[삼례독서회사건]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 출신인 정병은은 1930년 2월 배재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광주학생운동 동조시위에 참가했다가 퇴학당한 후 귀향해서 영신학교[私立永新學校] 교사로 재직하고 있었으며, 정병은은 자신이 중심이 되어 독서회를 조직했다. 정병은을 비롯한 채암석·손표기·정용득·전창근 등 독서회원들은 식민지 현실의 모순을 타파하기 위해 신사상을 수용하고, 관련 서적을 읽는 한편 노동자와 농민을 규합해서 적색조합을 설립하고자 노력했다. 1933년 10월경 소위 ‘삼례독서회사건’으로 이들 회원들이 검거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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