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000129
한자 花心里
영어공식명칭 Hwasim-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화심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전경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전주군 소양면 화심리로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35년 - 전주군 소양면 화심리에서 완주군 소양면 화심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면적 10.74㎢
가구수 210세대[2018년 6월 30일 기준]
인구[남/여] 455명[남 235/여 220]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화심리는 지형이 꽃속처럼 생겼으므로 ‘화심리’라 했다. 원래 ‘작약동’이라고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화심리’라고 불렸다. 작약동이라고 불린 이유는 묵방산 줄기가 뻗어 내려 산세가 작약처럼 피었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화심리는 구진, 원화심, 유상, 약암리로 구성되어 있다. 구진(九津, 龜津, 九進)은 구진리 동북쪽에 새로 생긴 신기(新基)[새터]와 함께 이루어진 마을이다. 원화심(元花心)은 묵방리(墨房里)[먹방이]와 함께 이루어진 곳으로 ‘원화심’은 법정리명과 구분하기 위해 ‘원(元)’을 덧붙인 것이다. ‘화심’은 풍수설에 작약화예혈이라 해 생긴 이름이라 한다. 묵방리는 ‘먹방’이 본 이름인데 그 마을이 묵방산 밑이므로 산 이름에서 마을 이름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도 있고, 또 마을에 먹을 만드는 먹방이 있어 마을 이름이 먼저 생기고 그에 따라 산 이름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도 있다. 고대에는 평야지대가 아니면 곳곳에 먹을 만드는 먹방이 있었다. 그런데 송연묵(松燃墨)을 만드는 곳은 산기슭이나 산속에 있는 경우가 많았으니 산 이름 먹방산이 먼저 생길 수도 있다. 약암마을은 틈새를 좋아하는 작약꽃이 바위 사이에 피었다고 해서 ‘약바우’, ‘약암’으로 불리워졌다. 또한 약암마을에는 선주동이라 불리는 곳이 있는데 신선이 밤에 내려와 노는 선인야유혈이 있다고 해서 불리워졌다고 한다. 유상(柳上)은 뒷산에 유지앵소혈이 있다는 풍수설에서 생긴 이름이라 한다. 또한 약암(藥岩)[약바우]은 성주동(聖周洞, 聖株洞, 聖智洞)과 함께 구성된 마을로, 약암리는 바위 사이에서 작약꽃이 피었다고 하며 그래서 작약동이라고도 한다. 성주동에는 성인야유혈이 있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화심리는 본래 전주군 소양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화심리, 구진리, 묵방리, 유상리, 약암리를 병합하고 ‘화심리’라 해서 전주군 소양면에 편입되었다. 1935년 전주군 전주읍이 전주부로 승격되어 분리되고, 전주군을 완주군으로 개칭되어 완주군 소양면 화심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화심리의 주산은 묵방산이며 성안골, 활무당골, 세암골, 각긍골, 홀작골, 게너머골, 빈터골, 삼밭골, 소태골, 묵방골, 남석골, 가래골, 성가마골, 괴엄방골 등의 골짜기가 있고 하천으로는 화심천이 있다. 유상마을에는 주산이 가무봉으로 가뭄이 심할 때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다고 하며 공작골재가 있고 천주교 탄압 때 이곳까지 피했다가 죽임을 당한 막고개가 있다. 하천은 연내천, 약암천, 화심천, 큰번지천이 흐르고 있고 약암마을의 주산은 만덕산이며 서마골, 가능골, 농골, 배나무골 등의 골짜기 명칭이 전해진다. 하천으로는 성지천과 백토천, 점재천이 있다.

[현황]

화심리의 면적은 10.74㎢이며, 2018년 6월 30일 기준 인구수는 총 210세대에 455명[남 235명, 여 220명]이다. 화심리의 행정리는 구진, 화심, 유상, 약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화심리에는 동양초등학교, 구진마을회관, 보건진료소, 대한예수교장로회 화심교회, 예안김씨 영모제, 약암교회, 오씨정려, 문화재아웃리치연구소, OK교회 등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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