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000344
한자 華山面戰鬪
영어공식명칭 Hwasanmyeon Battle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화월리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임혜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07년 11월 15일연표보기 - 화산면전투 발생
발생|시작 장소 화산면전투 -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화월리 지도보기
성격 항일운동
관련 인물/단체 이규홍

[정의]

1907년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에서 이규홍 의병대가 일본군과 벌인 전투.

[개설]

이규홍 의병대는 1907년 지금의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화월리 일대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치렀는데, 이 전투를 화산면전투라고 한다. 이규홍은 의병운동의 공적을 인정받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1968년 대통령 표창, 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역사적 배경]

대한제국의 군대가 해산당하면서 전국적으로 의병이 확대되는 가운데 이전부터 의병에 가담하려고 준비했던 이규홍이 1906년 의병대를 조직했다. 따라서 1906년 조직된 이규홍 의병대는 1907년 강제로 해산당한 대한제국 군인이 참여하면서 전력이 강화되었다.

[경과]

이규홍은 아버지 이기영이 집에 비축되어 있는 곡물과 약 500마지기 전토를 팔아서 마련해준 자금으로 무기와 화약을 구입하는 한편 의병들을 모집했다. 병졸은 박이환, 문형모의 주선으로 전주감영 소속 해산당한 병정 100여 명, 각지에서 자원해 온 의병, 산포수 등으로 구성되었다. 이규홍이 쓴 『오하일기』에 의하면 모집된 군병이 257명, 사들인 무기는 양총 100여 자루, 한총 200여 자루, 연환이 20여 말, 화약이 10여 말이었다. 1907년 11월 6일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수선리 이규홍의 집인 관동자택을 떠난 의병대는 익산[현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현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고산[현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을 거쳐서 용담[현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 추정]에 이르렀다. 진안 일대를 중심으로 전라도에서 활동하고 있는 의병장 이석용, 문태수 등과 서로 힘을 합해 왜적을 토벌하는 일을 함께 하기를 도모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던 중 1907년 11월 15일 완주군 화산면 가금리[현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화월리 가경재]에서 이규홍 의병대와 일본군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다.

[결과]

화산면전투에서 이규홍 의병대는 일본군 29명을 사살했으나 의병 전사자도 21명이나 되는 피해를 입었다.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일대는 고산[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여산[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익산[전라북도 익산시]의 접경으로 전투상 요새지가 많았기 때문에 화산면전투 이후에도 일본군과 10여 일을 두고 전투를 계속 벌였다.

[의의와 평가]

이규홍 집안의 가산을 정리한 자금으로 비교적 무기를 갖춘 의병대로 출발했으며, 지역의 한계를 넘어 여러 의병대와 합동을 도모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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