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군 카톨릭농민회 KBS시청료거부투쟁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000374
한자 完州郡-農民會-視聽料拒否鬪爭
영어공식명칭 KBS tax rebellion Struggle of Catholicism Peasants' in 1984
이칭/별칭 완주군 가톨릭농민회 KBS-TV시청료거부운동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대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단 시기/일시 1984년 - 완주군 카톨릭농민회 KBS시청료거부투쟁 발단
발생|시작 시기/일시 1984년연표보기 - 완주군 카톨릭농민회 KBS시청료거부투쟁 발생
전개 시기/일시 1984년~1989년 - 완주군 카톨릭농민회 KBS시청료거부투쟁 전개
종결 시기/일시 1989년연표보기 - 완주군 카톨릭농민회 KBS시청료거부투쟁 종결
발생|시작 장소 완주군 카톨릭농민회 KBS시청료거부투쟁 -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읍내리 지도보기
성격 저항운동
관련 인물/단체 박병준 신부|고산천주교회|가톨릭완주군협의회|민정당|KBS-TV 시청료 거부 기독교 범국민운동본부|KBS시청료 거부 범국민운동본부|시청료 거부 및 언론자유 공동대책위원회

[정의]

1984년부터 1987년까지 전라북도 완주군에서 벌어진 완주군 카톨릭농민회가 주도한 KBS 시청료 거부투쟁.

[개설]

천주교 전주교구 고산교회[고산성당] 박병준 신부와 신자들이 중심이 되어 전두환 정권의 나팔수로 전락한 KBS에 대한 경종과 전두환 정권에 대한 저항운동으로 시작, 전국으로 확대되어 1987년 ‘6월민주화운동’의 동인(動因)이자 견인차로 작용했으며, 전 국민이 주체가 된 민주화운동의 승리로 귀결시키는데 선구적인 역할을 한 사건이 KBS시청료거부투쟁이다.

[역사적 배경]

1979년 ‘12·12군사쿠데타’와 1980년 5월 18일 광주를 피로 물들이며 정권을 장악한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는 공포정치를 자행했다. 특히 언론기관을 통폐합하고 「언론기본법」을 제정한 뒤 ‘보도지침’을 내려 감시와 통제를 일상화했다. 그 결과 한국방송공사[KBS]를 비롯한 텔레비전은 모든 뉴스의 첫머리를 전두환의 동정으로 시작했다. 특히, 저녁 9시를 알리는 시보(時報)가 ‘땡’ 하고 울리면, 뉴스 진행을 맡은 앵커가 “전두환 대통령은 오늘 …”로 시작하는 뉴스를 내보냈다. 국민들은 이 뉴스를 ‘땡전 뉴스’라고 부르며 조롱했다. 한편 1981년부터 컬러텔레비전 방송이 시작되었다. 이때 500원에 불과하던 시청료가 2,500원으로 5배나 올랐다. 거기에다 1981년 3월부터 공영방송인 KBS에서 광고 방송을 시작했다. 반면 건전한 시사교양 프로그램은 실종되고, 퇴폐적이고 저급한 프로가 범람했다. 공영방송인 한국방송공사가 이처럼 정권의 나팔수가 되자 국민 불만은 커져만 갔다. 이 무렵 터져 나온 것이 ‘KBS-TV시청료거부운동’이다. KBS-TV시청료거부운동은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에 도전한 일대 사건이었다.

[경과]

한국방송공사의 정치적 굴절과 저급한 방송 내용에 대해 감시와 통제 수단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국민이 할 수 있는 일은 방송을 보지 않는 것과 시청료 납부 거부였다. 처음에는 개인 차원에서 시청료 납부를 거부하는 일이 일어났다. 그러다 “KBS 시청료는 [여당인] 민정당과 정부만 내라”며, 완주군 카톨릭농민회고산천주교회에서 1984년 4월 28일에 가장 먼저 조직적으로 KBS-TV 시청료 납부 거부를 선언했다. 가난하고 소외된 농민이 이 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선언문을 통해 “암담한 농촌 현실의 귀와 눈이 되어야 할 방송이 일천만 농민의 삶을 부정한 채 소수 몇 사람의 방송으로 전락한 데 분노를 느끼며, 이제 우리 농민은 침묵을 깨부수고 우리의 권리를 우리 손으로 지킬 것”을 천명했다. 그리고 시청료 체납에 대한 압류를 내세운 협박 중지와 왜곡편향 보도의 즉각 중단을 요구했다. 이는 1980년 5월 광주학살 이후 공포정치로 일관해 온 신군부에 대한 최초의 국민저항운동이었고, 민주화운동에 불을 댕기는 불쏘시개가 되었다. 완주군 고산천주교회 박병준 신부와 농민들이 제기한 시청료 거부운동은 전국으로 확산되었고, 1986년 1월 20일 KBS-TV 시청료 거부 기독교 범국민운동본부가 발족했으며, 1986년 2월 11일에는 KBS시청료 거부 범국민운동본부가 결성되었고, 1986년 9월 29일에는 시청료 거부 및 언론자유 공동대책위원회 결성이 결의되었다. 그 결과 1984년 1,256억 원까지 늘어났던 KBS 시청료 수입은 1985년 1,196억원, 1987년 1,012억 원, 1989년 790억 원으로 급감되었다. 신군부 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한국방송공사에 대한 국민들의 심판이 그만큼 강력했다. 이 같은 저항운동의 경험과 대동단결의 의지는 1987년 ‘6월민주화운동’의 동인(動因)이자 견인차로 작용되었으며, 전 국민이 주체가 된 민주화운동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결과]

1984년 1,256억원까지 늘어났던 KBS 시청료 수입은 1985년 1,196억원, 1987년 1,012억 원, 1989년 790억 원으로 급감했다. 신군부 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공영방송에 대한 국민들의 심판이 그만큼 강력했으며, 이와 같은 저항운동의 경험과 대동단결의 의지는 1987년 ‘6월민주화운동’의 동인(動因)이자 견인차로 작용했으며, 전 국민이 주체가 된 민주화운동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의의와 평가]

KBS-TV 시청료 납부 거부운동은 한국방송공사와 싸운 것이 아니라 전두환 정권에 대한 투쟁이었으며, 시민이 손쉽게 참여할 수 있는 가장 소극적인 거부권 행사이자 불복종운동이었다. 그 당시 KBS시청료 거부 범국민운동본부의 집계에 따르면, TV 수상기 보유 가구의 52%가 KBS-TV 시청료 납부 거부운동에 참여했다. 방송의 공영성 확보라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평화적인 방법으로 KBS-TV 시청료 납부 거부운동이 전개되어 시민의 저항의식과 참여정신을 고양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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