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000401
한자 完州威鳳寺普光明殿
영어공식명칭 Bogwangmyeongjeon Hall of Wibongsa Temple, Wanju
분야 문화유산/유형 유산,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위봉길 53 위봉사 내
시대 고대/삼국 시대/백제
집필자 서지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사항 시기/일시 1673년 - 완주 위봉사 보광명전 '康熙二十六年癸丑五月’ 란 명문이 새겨진 암막새 출토
개축|증축 시기/일시 1838년 - 완주 위봉사 보광명전 중수
관련 사항 시기/일시 1851~1874년 - 완주 위봉사 보광명전 삼세후불도(三世後佛圖) 중 좌측 아미타도 조성
관련 사항 시기/일시 1880년 - 완주 위봉사 보광명전 삼세후불도(三世後佛圖) 중 우측 약사도 조성
관련 사항 시기/일시 1896년 - 완주 위봉사 보광명전 신중도(神衆圖) 조성
문화재 지정 일시 1973년 6월 23일연표보기 - 완주 위봉사 보광명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39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1977년 8월 22일연표보기 - 완주 위봉사 보광명전 보물 제608호 승격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완주 위봉사 보광명전 보물로 재지정
현 소재지 완주 위봉사 보광명전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위봉길 53 위봉사지도보기
성격 불전(佛殿)
양식 다포계 팔작지붕 양식
정면 칸수 3칸
측면 칸수 3칸
소유자 위봉사
관리자 위봉사
문화재 지정 번호 보물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위봉사에 있는 불전.

[개설]

위봉사는 창건과 관련하여 두 가지 설이 있는데 604년(백제 무왕 5) 서암(瑞巖)대사가 창건했다는 설과 신라 말 최용각[또는 최용갑]이 세 마리 봉황이 날아든 흔적을 보고 절을 창건했다는 설이 있다. 1359년(공민왕 8)에 나옹(懶翁)선사가 중창했고, 1467년(세조 12)에 선석(善釋), 석잠(釋岑) 스님이 중수(重修)한 기록이 있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으로 위봉사는 소실되는데 1601년 이전에 복원된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 후기에는 위봉산성과 행궁을 지키는 승영사찰(僧營寺刹)이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31본산의 하나로 지정되었다. 완주 위봉사 보광명전은 석가여래를 모신 위봉사의 주불전으로 1601년 이전 복원 당시 재건되어 이후 중수와 보수가 이루어졌다. 1973년 6월 23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39호로 지정되었다가 1977년 8월 22일 보물 제608호로 승격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위치]

위봉사는 추줄산 남쪽 기슭에 자리하는데 위봉마을을 지나 위봉산 자락에 남동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완주 위봉사 보광명전위봉사의 주불전으로서 위봉사의 중심부에 있다. 위봉사 입구 일주문, 사천왕문을 지나 지장전[봉서루] 누하로 계단을 통해 진입하면 평지로 정비된 영역의 넓은 마당이 있는데 마당 뒤로 완주 위봉사 보광명전이 있다.

[변천]

완주 위봉사 보광명전의 정확한 건립연대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문수·보현·관음·지장보살입상 조성발원문(文殊·普賢·觀音·地藏菩薩立像 造成發願文)」[1605]이라는 사료를 통해 건축시기를 추정할 수 있다. 기록에 의하면 1597년(선조 30)에 정유재란으로 위봉사와 소속 암자인 북암이 소실되는데 1601년(선조 34)에 북암의 법당이 건축된다. 위봉사가 북암보다 사격이 높은 본찰이므로 1601년보다는 이전 시기에 재건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康熙二十六年癸丑五月’이라는 명문이 새겨진 완주 위봉사 보광명전 암막새가 출토되어 1673년(현종 14)에 중수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보광명전 현판기(普光明殿 懸板記)」에는 ‘道光十八年乙未六月季夏日, 改擔施主, 鎭將李昌德, 重刊化主比丘莊珣, 刻比丘成云’라는 기록이 있어 을미년[1838, 헌종 4] 6월 완주 위봉사 보광명전의 서까래를 진장(鎭將) 이창덕(李昌德)이 시주하여 중수한 것을 알 수 있다. 이후 1978~1979년 공포 이상 해체보수가 이뤄지고, 1986년 철물 보강과 고색 단청, 1989년 번와 보수, 1990년 창호 및 기단 보수, 1996년 번와보수, 2009년 불단 하부 마룻바닥 보수 등 부분적으로 보수공사가 이루어졌지만, 조선시대 초기 다포의 특징을 지닌 불전으로 당시의 상태를 잘 보존하고 있다.

[형태]

완주 위봉사 보광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공포가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과 기둥 사이에 있는 다포계 건물이다.

[현황]

완주 위봉사 보광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장방형 평면이며 내부는 후면의 내진열에 고주 2개를 세워 후퇴를 두는 평면형식으로 고주 양측면에 팔각의 보조 기둥을 세워 후불벽을 구성한 조선시대 불전의 일반적인 형식이다. 기단은 자연석 허튼층쌓기[불규칙한 돌을 사용하여 가로, 세로줄눈이 일정하지 않게 흩트려 쌓는 일]로 조성되었다. 건물이 경사지에 위치해 석축을 쌓아 전면과 좌측면이 이중기단의 형태를 보인다. 기단의 각 네모서리에는 활주초석이 놓이며 정면 중앙에는 자연석 계단이 5단으로 조성되었다. 석축은 완주 위봉사 보광명전 우측에 위치한 나한전과 연결되어 있다. 초석은 덤벙주초로 형태와 크기가 다양한 부정형의 자연석 초석이며 주좌 상면을 거칠게 다듬었으며, 기둥은 그랭이질 하여 초석과 결구했다. 기둥은 모두 원주로 외관상 형태는 민흘림기둥[올라가면서 서서히 두께가 좁아지는 기둥]이다. 공포는 내외7포[내외3출목]의 다포식 공포로 구성되었다. 정면은 각 칸에 2조씩 놓여 포간의 거리가 일정하며 크기가 같은 9개의 포벽을 구성했다. 양 측면은 어칸에만 주간포를 2조 두었는데 포벽을 넓게 두어 정면과 다른 형태의 포벽을 구성했다. 배면의 공포는 어칸에 주간포 2조를 두어 정면과 같으나 협칸에는 주간포 1조를 두어 중앙에서 양단으로 갈수록 포벽이 넓어진다. 가구는 내부고주를 사용한 1고주 5량가로 구성되었다. 내진의 고주는 상부 1/3지점에 퇴량과 대량이 결구되고 보아지가 기둥을 관통하여 양쪽의 퇴량과 대량을 받치고 있으며, 고주 상부에서는 중도리와 종량을 직접 받는다.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겹처마로 구성했으며 양 측면의 합각부는 풍판을 설치했다. 완주 위봉사 보광명전의 각 입면에 창호가 설치되어 있는데 정면에 3개소, 좌측면에 1개소, 우측면에 1개소 배면에 3개소가 설치되었다. 완주 위봉사 보광명전 정면과 좌측면, 우측면에는 세살문을 설치하고 배면에는 판문을 설치했다. 현재 창호는 1990년 9월 수리된 것으로 정면, 좌측면 창호 10짝을 보수하고 우측면 창호 1짝을 신설했다. 단청은 1673년 중수된 이래로 당시의 상태를 잘 보존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완주 위봉사 보광명전은 귀포에 사용된 간화기법이나, 우미량의 사용, 앙서[끝이 위로 삐죽하게 휘어 오른 쇠서받침]의 형태, 평면구성, 가구법 등 다포의 초기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또한 완주 위봉사 보광명전은 우수한 옛 채색기법과 조선시대 초기 다포의 특징을 지닌 불전으로, 다포 형식의 시대적 변화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목조 불전 건축 연구에 소중한 자료가 되는 문화재로 평가를 받고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