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교리 유태양, 반남박씨 정려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000509
한자 新橋里柳台養, 潘南朴氏旌閭
영어공식명칭 Monument Gate for Bannam Park Clan, Yu Tae-yang in Singyo-rin
분야 문화유산/유형 유산,역사/근현대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신교리 원신교마을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최범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893년(고종 30) 3월연표보기 - 신교리 유태양, 반남박씨 정려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2003년 - 신교리 유태양, 반남박씨 정려 개축
현 소재지 신교리 유태양, 반남박씨 정려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신교리 원신교마을 앞 길가지도보기
성격 정려각
양식 겹처마 팔작 기와지붕
정면 칸수 2칸
측면 칸수 1칸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신교리 원신교마을에 있는 유태양과 부인 반남박씨의 정려.

[개설]

유태양[1804~1860]은 본관이 전주이고, 시조 장령공의 17세손이며, 아버지는 유규보이다. 아내 효부 반남박씨는 1804년(철종 11, 갑자)생이고, 1859년 1월 5일 사망했다. 유태양은 평생 효경(孝經)을 읽었고 떳떳한 일이 아니면 행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괴질에 걸려 고생하자 밤잠을 자지 않고 약을 달여 올렸고, 유명한 의원을 수없이 불러 처방을 했으며 하늘과 산에 기도해서 대신 아프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어머니가 5월 6일 병이 위독해서 혼미한 상태에 빠지자, 유태양이 도끼로 손가락을 찍었으나 쉽게 잘리지 않자 그의 아내 반남박씨와 형수 연안이씨, 처녀 여동생이 함께 단지주혈을 했다. 피를 마신 어머니는 다시 살아났다.

[위치]

신교리 유태양, 반남박씨 정려각은 완주군 소양면 신교리 원신교마을 앞 길가에 있다.

[변천]

1887년(고종 24) 윤5월 28일 유림이 유태양과 반남박씨의 천거장을 올렸고, 1892년(고종 29) 8월 28일 『전승 정려지전(傳承旌閭之傳)』에 실리게 되었으며, 1893년(고종 30) 3월에 명정되었다. 신교리 유태양, 반남박씨 정려각은 2003년에 개축했다.

[형태]

신교리 유태양, 반남박씨 정려각은 팔작지붕으로 크기는 430×200×210㎝이다. 편액의 크기는 190×38㎝이다.

[현황]

신교리 유태양, 반남박씨 정려각에는 ‘효자 통정대부 행용양위부호군 유태양, 열녀 반남박씨’ 편액과 ‘효부 학생 유도양처 유인 연안이씨’라는 편액이 보관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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