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천리 고인돌 떼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000531
한자 德川里-
영어공식명칭 Dolmens in Deokcheon-ri
이칭/별칭 덕천리지석묘
분야 문화유산/유형 유산,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고분
지역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덕천리 1479, 1487 일대 칠암(七岩)마을|덕천리 1236, 537 일대 구암(九岩)마을
시대 선사/청동기
집필자 정다운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79년 - 덕천리 고인돌 떼 문화재지표조사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6년 - 덕천리 고인돌 떼 『문화유적분포지도』 작성 지표조사
소재지 덕천리 고인돌 -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덕천리 1479지도보기, 1487지도보기 일대[칠암(七岩)마을]
소재지 덕천리 고인돌 -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덕천리 1236지도보기, 1509지도보기, 537지도보기 일대[구암(九岩)마을]
성격 고인돌
양식 기반식 고인돌
크기(높이,지름) [A군-덕천리 1479] 1호-240㎝[장축], 180㎝[단축], 100㎝[폭], 2호- 210㎝[장축], 130㎝[단축], 110㎝[폭], 3호- 250㎝[장축], 170㎝[단축], 120㎝[폭]|[C군-덕천리 537] C-1호 400㎝[장축], 200㎝[단축], 100㎝[폭]|[D군-덕천리 1509] 370㎝[장축], 260㎝[단축], 210㎝[폭]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덕천마을 내 칠암(七岩)마을과 구암(九岩)마을에 걸쳐 평지에 조성된 30여 기의 청동기시대 고인돌 떼.

[개설]

덕천리 고인돌 떼구이면 덕천리 내 칠암(七岩)·구암(九岩) 두 마을에 걸쳐 분포하고 있다. 대략 5개의 군을 이루며 30여 기가 흩어져 있는데, 형식은 바둑판식이라고도 불리는 기반식(碁盤式) 고인돌이다. 구암마을은 이름의 유래에서 원래 고인돌에 의해 붙여진 이름으로 생각되나 이 마을의 당산 아래 수백 년 묵은 느티나무 아래에 있는 거대한 자연암인 거북바위로부터 ‘귀암’에서 변하였다는 설도 있다. 덕천리 고인돌은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완주 지역에서 가장 많은 고인돌이 군집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완주 지역 청동기시대 고인돌 축조문화가 응집되었던 곳임을 확인할 수 있다.

[위치]

완주군 구이면 덕천리 칠암·구암마을은 경각산(鲸角山)[659m]의 줄기에서 북방으로 퍼지는 선형 대지에 위치한다. 칠암마을에서 덕평로를 타고 남쪽인 원덕천마을로 가는 서편 밭 가운데에 7기 고인돌이 흩어져 있으며, 칠암마을에서 광곡천을 건너 남쪽 1.2㎞ 지점의 구암마을 내 20여 기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덕천리 고인돌 떼는 1979년 전북대학교 박물관이 실시한 『전주·완주 문화재조사보고서』에서 확인되었고, 이후 1996년 『완주군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가장 최근의 조사로 2006년 전북대학교 박물관과 완주군이 실시한 『문화유적분포지도』를 통해 상세히 기술되었다.

[형태]

덕천리 고인돌 떼는 모두 화강암(花岡岩)의 괴석(塊石)으로 되어 있으며, 개석으로 자연형의 괴석을 쓰고 있는 점이 전형적인 기반식[남방식, 바둑판식] 고인돌이다. 구암마을에 위치한 고인돌의 개석 규모는 마을회관 옆의 주택 앞마당의 장축 400㎝, 단축 200㎝, 두께 100㎝의 것이 가장 크며, 이외의 고인돌은 대부분 장축 200~370㎝의 규모에 해당한다. 칠암마을의 고인돌은 매몰되어 제원을 확인할 수 없는 것을 제외하고, 개석의 크기는 190~245㎝ 사이의 규모로 확인되었다. 또한 확인된 개석의 형태는 판석의 장방형을 띄고 있다. 이들 고인돌 떼의 방향은 대체로 동서 또는 남북으로 놓여 있으나 바로 옆에 붙어 있는 것의 방향이 상치된 점에서 일정한 방향 의식은 없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현황]

덕천리의 고인돌은 전형적인 기반식 고인돌로서 6.25전쟁과 개답(開沓)[미개간지를 논으로 만드는 일]으로 파괴되거나 이동되기도 하면서 마을에 보존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덕천리 고인돌 떼는 완주 지역에서 가장 많은 수가 분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완주의 고인돌 문화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유적이라고 할 수 있다. 덕천리 고인돌 떼는 발굴조사가 되지 않아 정확한 성격을 파악할 수는 없지만, 개석의 규모를 통해 완주 지역에서도 고인돌 문화가 상당히 발전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완주 지역의 고인돌 중에서는 덕천리 이외에도 구이면에서 고인돌이 상당 부분 확인되고 있어, 정밀 발굴조사를 토대로 밝혀내야겠지만 이 일대가 산줄기와 강을 토대로 한 청동기시대 중심지였을 가능성이 있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고*** 德川里- → 德川里支石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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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고고학자님의 의견은 수용할 수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20.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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