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000591
한자 -聖堂址
영어공식명칭 Doejae Catholic church Site
분야 문화유산/유형 유산,역사/근현대
유형 유적/터
지역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승치리 729-1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박대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896년연표보기 - 되재성당 한강 이남에서 최초로 건축된 한옥성당
폐지 시기/일시 1950년연표보기 - 되재성당 한국전쟁 때 전소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1년 8월 10일~10월 9일 - 되재성당지 한국전쟁 때 소실된 성당의 규모와 형태 파악을 위해 복원자료로 활용
문화재 지정 일시 2004년 7월 30일연표보기 - 되재성당지 전라북도 기념물 제119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되재성당지 전라북도 기념물로 재지정
소재지 되재성당지 -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승치리 729-1 지도보기
출토 유물 소장처 되재성당지 -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승치리 729-1 지도보기
성격 성당
지정 면적 5,355㎡
소유자 전주구천주교회유지재단
관리자 전주구천주교회유지재단
문화재 지정 번호 전라북도 기념물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승치리에 있는 성당터.

[개설]

되재성당은 한국 천주교회에서 서울 약현성당에 이어 두 번째로 완공된 성당[1895]이며, 한강 이남에서는 처음 세워진 성당으로 최초의 한옥 성당이다. 되재성당은 대한제국기에 신학문을 교육하는 학교와 측량강습소를 설립해 근대적 실업교육을 실시했다. 되재성당은 한국전쟁 때 건물은 전소되었으나 새로 건축해서 공소 건물로 사용되었다. 되재성당은 1991년 발굴조사 이후 2005년부터 복원사업을 벌여 1895년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했다.

[변천]

한국 천주교회는 설립 이래 여러 차례 박해를 받았고, 그때마다 신자들은 궁벽한 산간벽지로 들어가 신앙생활을 지속했다. 그런데 1886년 ‘조불수호조약(朝佛修好條約)’이 체결되면서 선교사의 전교활동이 가능해지고, 묵시적으로 전교의 자유가 허용되었다.

1891년 죠조(Jozeau) 신부가 되재 인근 차돌배기[백석, 완주군 운주면 구제리]에 거처를 정하고 전교활동을 시작했다. 그 당시 산골짜기에 성당을 정한 이유는 아직 박해의 여파가 남아 있었고, 신자들이 주로 전라도 북부 산간지대에 거주했기 때문이었다. 1893년 부임한 비에모(Villemot) 신부는 1894년 1월 차돌배기에서 완주군 화산면 승치리 되재로 옮긴 뒤 성당 신축을 시작했다. 그러나 같은 해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 잠시 서울로 피신했고, 1895년 초부터 공사가 재개되었다. 1895년 되재성당에서 첫 미사를 봉헌했으며, 1896년 11월 1일 당시 조선교구장이던 뮈텔 주교 집전으로 성당 축성식을 가졌다. 이때 뮈텔 주교가 되재성당과 마을 등을 글과 스케치로 남긴 일기와 사진 자료 등을 통해 옛 성당의 규모와 구조 형태를 짐작할 수 있다. 되재성당이 설립된 후 주변에 큰 교우촌이 형성되었고, 1890년대 후반에는 주일미사 참례자가 400명에 달할 정도로 교세가 대단했다고 한다. 1907년에는 신성학교를 세워 신자와 주민들에게 한글과 한문을 교육했으며, 1908년에는 태극계명학교로 이름을 바꾸고 한글, 한문, 수학, 물리, 역사, 지리, 화학 등 신학문을 가르쳤다. 학제는 4년제였는데, 주간에는 적령기의 학생을 대상으로 교육하고, 밤에는 노동하는 어른을 대상으로 가르쳐서 ‘노동야학교’라고도 불렸다. 1912년 교사(校舍)를 완공했고, 1922년에는 학교를 되재성당 구내로 옮겼지만, 어렵게 운영되다가 1940년에 폐교되고 말았다.

한편 1908년에는 태극계명측량강습소를 설립해 측량기술자를 양성했다. 제1회 졸업식은 1909년 3월 24일이었는데, 졸업생이 무려 32명이나 되었다. 측량강습소는 유학과 문학 위주의 보수적 학문 분위기에서 근대적 실업교육을 실시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신자들의 이주(移住)로 교세는 위축되었고, 한국전쟁 당시 되재성당 건물이 전소(全燒)되어 터만 남게 되었다. 한국전쟁이 끝난 1954년에 신자들이 되재성당지에 임시로 건물을 지어 생활했으나 1964년에는 도시화 현상으로 교세가 급격히 감소해 수청성당 관할 공소로, 다시 고산성당 관할 공소가 되었다. 현재 되재성당지에는 2005년부터 기존의 공소 건물을 해체하고 복원작업을 시작해 성당과 종탑 등이 1895년 당시 모습대로 복원되었다.

[위치]

되재성당지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승치리 원승마을에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완주군청은 1991년 8월 10일부터 10월 9일까지 전북대학교 박물관에 의뢰해서, 되재성당을 복원하기 위한 복원자료로 활용하는 한편 한국천주교회사 초기에 건립된 성당에 대한 자료의 축적 및 한국교회사 구축에 중요한 학술자료를 수집하려는 목적으로 발굴조사를 실시했다. 공소 건물 주변에 대한 전면적인 발굴조사와 주변 지역에 대한 유구 탐색조사를 실시해서 되재성당지를 비롯해 복사실 사제관 등을 확인했다.

[현황]

현재 되재성당터지에는 2005년부터 기존의 공소 건물을 해체하고 복원작업을 시작해 성당과 종탑 등이 1895년 당시 모습대로 복원되었다. 한옥 성당과 나무로 만든 종탑, 사제가 신자들을 등지고 벽을 보며 미사를 봉헌하는 옛 성당 형태, 남녀 신자를 구별하는 칸막이도 재현했다. 되재성당지는 2004년 7월 30일 전라북도 기념물 제11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북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되재성당지 뒤편에는 전라도 북부지역에서 사목했던 조스 신부와 라푸르카트 신부의 묘소가 있다.

[의의와 평가]

되재성당은 한국 천주교회에서 서울 약현성당[1892]에 이어 두 번째로 완공된 성당[1895]으로 한강 이남에서는 처음 세워진 최초의 한옥 성당이며, 천주교가 우리나라에 전래되던 초기에 전라도 동북부 산간지역의 중요 거점이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