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000614
한자 仁同張氏
영어공식명칭 Indong Jang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봉동읍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이동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본관 인동장씨 본관 - 경상북도 구미시 인동면 일원
세거|집성지 인동장씨 세거지 -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지도보기|소양면지도보기
세거|집성지 인동장씨 사욱파 세거지 - 완주군 상관면 신원리
성씨 시조 장금용(張金用)
입향 시조 장강(張綱)

[정의]

장금용을 시조로 하고 장강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완주군의 세거 성씨.

[연원]

인동장씨(仁同張氏)의 시조는 고려 초 상장군 장금용(張金用)이다. 관향 인동현은 현재의 경상북도 구미시 인동면 일원이다.

[입향 경위]

인동장씨전주에 살기 시작한 것은 조선 건국 후 장강(張綱) 때부터로 보인다. 장강은 전주에 세거한 인동장씨 장령공파 1세로 중시조가 된다. 장령공파라고 하는 것은 장강의 아버지 장범(張範)[1394~?]이 장령(掌令) 벼슬에 제수되었기 때문이다. ‘옥야장씨(沃野張氏)’라고도 하는 것은 장범이 옥야(沃野)로 유배되어 뿌리를 내렸기 때문이다. 옥야현은 현재 익산시의 중심[옛 이리시] 일원으로 조선시대에는 전주에 속했다. 장범은 1394년(태조 3)에 태어났으며 성주훈도(星州訓導)를 지내고 문학으로 천거되어 장령에 제수되었으나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현황]

인동장씨는 우림면을 중심으로 전주에 세거하고 있었다. 1930년에 전주와 완주가 분리되기 전에 편찬된 인동장씨 전주파 세보인 『인동장씨세보』[3책]에 각 분파와 세거지가 표기되어 있는데, 인동장씨의 세거지로 나오는 우림면, 조촌면, 난전면, 초포면 등은 모두 현재는 전주시에 편입되어 있다. 사욱(師旭)파의 세거지는 상관면 신원리로 지금의 완주군에 속한다. 『완주군지』에 통덕랑 장만최(張萬最)의 후손이 임진왜란을 피해 소양으로 들어와 세거했다고 전한다. 1666년(현종 7) 진사시에 합격한 장만기의 동생으로 장만최가 나오는데, 동일인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장만기가 1639년(인조 17) 출생이므로 임진왜란 후 동생이 소양으로 들어왔다는 것은 의문이 없지 않다. 한편 장현광의 후손이 봉동으로 들어와 구미리에 세거했다고 한다. 현재 전주시와 완주군의 인동장씨 세거 내력을 구분해 살피는 데에는 애매한 점이 있다. 2015년 완주군에 거주하는 인동장씨는 1,234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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