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000667
한자 洪述海
영어공식명칭 Hong Sul-hae
이칭/별칭 중선(仲善)
분야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구미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송만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722년(경종 2)연표보기 - 홍술해 출생
활동 시기/일시 1750년(영조 26) - 홍술해 진사시 합격
활동 시기/일시 1759년(영조 35) - 홍술해 정시문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761년(영조 38) - 홍술해 사간(司諫)이 됨
활동 시기/일시 1774년(영조 50) - 홍술해 이조참의(吏曹參議)와 대사성(大司成)을 지냄
활동 시기/일시 1775년(영조 51) - 홍술해 황해도관찰사(黃海道觀察使)가 됨
몰년 시기/일시 1777년(정조 1)연표보기 - 홍술해 사망
출생지 홍술해 출생지 -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구미리 지도보기
유배|이배지 홍술해 유배지 -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도
성격 문관
성별 남자
본관 남양(南陽)
대표 관직 대사성(大司成)|황해도관찰사(黃海道觀察使)

[정의]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문신.

[가계]

홍술해(洪述海)[1722~1777]의 자는 중선(仲善)이고,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홍수제(洪受濟), 할아버지는 대사간(大司諫) 홍우전(洪禹傳), 아버지는 이조판서 홍계희(洪啓禧), 양아버지는 큰아버지 홍계손(洪啓孫), 어머니는 김취로(金取魯)의 딸이다.

[활동 사항]

홍술해는 1750년(영조 26) 진사시에 합격하고, 1759년(영조 35) 정시 문과에 급제했다. 이후 상시봉원도감(上諡封園都監)의 감조관(監造官), 정언(正言), 지평(持平), 수찬(修撰) 등을 거쳐 1761년(영조 38)에 사간(司諫)이 되었다. 1763년(영조 40)에는 북도감진어사(北道監賑御史)로 활동했다. 이어 부응교(副應敎), 응교(應敎) 등을 거쳐 1764년(영조 41) 교리(敎理)가 되었으며, 승지를 거쳐 장연현(長淵縣) 안핵어사(按覈御史)가 되어 민전(民田)에 대한 장연현감의 비리를 지적했다. 그 뒤 집의(執義), 동부승지(同副承旨) 등을 역임하고, 1774년(영조 50)에 이조참의(吏曹參議)와 대사성(大司成)을 지내고, 1775년(영조 51) 황해도관찰사(黃海道觀察使)가 되었다. 하지만 재직 중 외지로부터 미곡(米穀)을 사들여 오면서 일부를 몰래 빼돌린 사실이 발각되어 파직되었다. 그리고 2년 후인 1776년(정조 즉위)에는 황해도관찰사로 있으면서 뇌물을 수수한 사실이 드러나 전라도 신안군 흑산도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되었다. 이듬해인 1777년(정조 1)에 홍술해의 아들 홍상범(洪相範)이 아버지의 치죄(治罪)에 불만을 품고 홍인한(洪麟漢), 정후겸(鄭厚謙) 등 벽파(僻派)와 제휴해서 정조를 시해(弑害)하고 은전군(恩全君) 찬(禶)을 추대하려는 역모를 꾀했다. 하지만 중간에 발각되어 홍술해는 아우 홍필해(洪弼海), 홍지해(洪趾海), 홍찬해(洪纘海) 및 조카 홍상간(洪相簡)과 함께 극형에 처했다. 향년은 50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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