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000907
한자 安心寺
영어공식명칭 Ansimsa Temple
분야 종교/불교
유형 기관 단체/사찰
지역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안심길 372[완창리 26]
시대 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이경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638년연표보기 - 안심사 건립
중수|중창 시기/일시 875년 - 안심사 중창
중수|중창 시기/일시 1601년 - 안심사 중창
중수|중창 시기/일시 1710년 - 안심사 중창
문화재 지정 일시 1984년 9월 20일연표보기 - 안심사 안심사계단및승탑군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09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1984년 9월 20일 - 안심사 안심사사적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10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05년 6월 13일 - 안심사 완주 안심사 금강계단 보물 제1434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05년 12월 16일 - 안심사 안심사소장동종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05호로 지정
최초 건립지 안심사 -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안심길 372[완창리 26]
현 소재지 안심사 -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안심길 372[완창리 26]지도보기
성격 사찰
창건자 자장
전화 063-263-7475
홈페이지 http://www.ansimsa.or.kr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완창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 소속 사찰.

[개설]

안심사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완창리 대둔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비구니 수도 도량으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의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이다.

[건립 경위 및 변천]

안심사는 638년(선덕여왕 7)에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하였고, 875년(헌강왕 1)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중창하였으며, 고려 말기에는 조구(祖丘)가 중창하였다. 그 뒤 조선시대에는 1601년(선조 34)에 수천(守天)의 중창을 거쳐 1710년(숙종 36)에는 신열(信悅)이 중건하였다. 안심사 사적비는 1759년(영조 35)에 세워졌는데, 그 내용을 보면, 당시 안심사에는 대웅전과 약사전 등 30여 개 당우와 석대암(石臺庵)·문수전(文殊殿) 등 12개 암자가 부속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안심사의 부도전은 1759년(영조 35)년에 중건되었다. 부도전이 처음 건립할 때 세조가 직접 글씨를 써서 보냈는데, 세조 글씨를 보관하기 위한 어서각(御書閣)도 부도전 중건 때 함께 건립했다. 그러나 6·25전쟁 때 모두 소실되고 소규모 인법당(因法堂)만이 남아 있었다. 1969년에 토담집형의 인법당에 후불탱화와 신중탱화를 조성하였다. 1991년 적광전과 요사를 건립하면서 인법당을 해체하였다. 1995년에는 일주문을 세웠으며, 산내암자인 약사암 법당을 건립하였다. 2015년에 대웅보전이 복원되었다.

[활동 사항]

안심사는 초파일 연등행사를 비롯해 매월 가족법회를 진행한다. 2017년 제1회 산사음악회 개최하였다. 캄보디아 선교에도 참여하고 있다.

[현황(조직,시설 현황 포함)]

안심사는 6·25전쟁인 한국전쟁 이전까지만 해도 무려 30여 채 전각과 13개 암자가 세워져 있던 거찰이었다고 한다. 1991년에 이르러 적광전과 요사를 건립했다. 가람배치를 보면 일주문, 부도전, 적광전, 산신각, 칠성각, 육화당, 석등, 안심사 사적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매월 둘째 일요일에 가족법회가 있다. 또한 어린이 수계법회가 유명하다. 현재 안심사 주지는 일연 스님이고, 신자는 200여 명 정도이다.

[관련 문화재]

현존하는 문화재로는 대웅전 터의 초석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09호인 안심사계단및승탑군(安心寺戒壇및僧塔群),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10호인 안심사사적비(安心寺事蹟碑) 등이 있다. 그리고 안심사소장동종(安心寺所藏銅鐘)은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05호로 지정되었다. 안심사계단및승탑군에서 안심사계단만 분리하여 보물 제1434호로 지정된 완주 안심사 금강계단(完州 安心寺 金剛戒壇)은 17세기 중반 이후 1759년 이전에 조성된 부처의 치아사리(齒牙舍利)와 의습(衣襲)을 봉안한 불사리탑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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