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탁리 상신 선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001174
한자 新卓里 上新-
영어공식명칭 Sangsin Menhir in Sintak-ri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유적/민간 신앙 유적
지역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산탁리
집필자 이상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현 소재지 신탁리 상신 선돌 -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신탁리 상신마을 지도보기
원소재지 신탁리 상신 선돌 -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신탁리 상신마을
성격 선돌
크기(높이,둘레) 30~50㎝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신탁리 상신마을에 있는 선돌.

[개설]

선돌 문화는 선사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널리 분포하는 큰돌[선돌, 고인돌, 칠성바위, 조탑]문화의 일종으로 많은 의미를 지닌다. 선돌은 일반적으로 마을 입구나 경계에 세워져 그 기능을 담당하는데 1기나 2기가 세워지는 것이 일반적이며 마을 수호, 생산과 풍요[기자, 성신앙], 액막이, 화재막이, 풍수비보적 역할을 한다. 신탁리 상신 선돌은 풍수와 관련해 본래 4기가 있었으며 현재도 3기의 선돌이 있다.

[위치]

신탁리 상신 선돌완주군 삼례읍 신탁리 상신마을의 동서남북에 4기가 있었다. 현재는 3기의 신탁리 상신 선돌을 볼 수 있다.

[형태]

신탁리 상신 선돌은 자연석으로 노출된 크기가 30~50㎝ 정도 된다.

[의례]

상신마을신탁리 상신 선돌이 세워진 유래는 풍수와 깊이 관련이 된다. 상신마을을 지나가던 대사가 마을이 풍수적으로 학이 내려와 앉은 형국이라 하면서 선돌을 세우라고 했다고 한다. 학이 날아가면 마을의 운이 다하기 때문에 학이 날아가지 못하도록 학의 머리[남쪽]와 꼬리[북쪽] 그리고 양 날개[동, 서쪽]를 누르기 위해 4개의 신탁리 상신 선돌을 세우게 되었다. 학의 머리 부분인 남쪽과 당산나무에는 오래 전에 제를 지냈다.

[현황]

상신마을은 약 350년 전에 청주한씨에 의해 형성되었다. 풍수적 형국과 관련해 신탁리 상신 선돌이 4기가 세워졌으나 전주시 송천동에서 완주군 공단으로 이어지는 과학로를 내면서 서쪽 신탁리 상신 선돌 1기가 훼손되었다. 동쪽 신탁리 상신 선돌도 2001년 무렵에 익산-장수고속도로 건설로 묻히고 새롭게 도로변에 조성해 놓았다. 남쪽 신탁리 상신 선돌도 언제인지 굴착기가 가다가 신탁리 상신 선돌의 윗부분이 깨져 그 위에 새로운 선돌을 올려놓았다. 현재 본래 있었던 것은 북쪽에 있던 신탁리 상신 선돌 1기뿐이다.

[의의와 평가]

신탁리 상신 선돌은 풍수형국과 관련되어 세워진 것으로 풍수비보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신탁리 상신 선돌은 마을 주변의 도로건설로 인해 묻히고 훼손되기도 했으나, 마을 사람들이 새롭게 복원해 지금도 보존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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