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13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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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蓮岡集 |
영어공식명칭 | Yeongangjib (Collection of Hwa Du-yong's poetry and prose works)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죽절리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김봉곤 |
저술 시기/일시 | 1914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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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처 | 독립기념관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남화리 230-1 |
성격 | 문집 |
저자 | 최두영(崔斗榮) |
권책 | 2책[권1, 2 결본] |
행자 | 10행 22자 |
규격 | 20.6×13.8㎝ |
권수제 | 연강집(蓮岡集) |
전라북도 완주군에서 활동한 최두영의 시문집.
최두영(崔斗榮)[1851~1933]의 호는 연강(蓮岡)이다. 전라북도 부안군 산내면(山內面) 연동(蓮洞) 출신으로,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명덕리 토정에 거주했다. 1913년 2월 매국노 이완용(李完用)에게 치죄문(治罪文)을, 일본천황·사내총독(寺內總督)·전라북도 도지사 이두황(李斗璜)에게 항일규탄문서를 발송했다. 그 문서에 “일본천황 대정에게 피로 복수하겠다[萬古血讐大正]”, “대정의 머리를 베어 우리 황제의 앞에 바치겠다[斬其大正之頭 獻于我皇上前]”라는 문구가 있어서 1914년 6월 체포되었다. 1914년 10월 30일 대구복심법원(覆審法院)[고등법원보다 낮고 지방법원보다 높은 일제강점기 재판소]에서 징역 3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최두영이 옥중생활을 하던 1914년부터 1916년까지 작성되었다. 이 문집을 독립기념관에 정본으로 기증하였다고 하나, 독립기념관에는 『연강집(蓮岡集)』 권3과 권4만 보관되어 있다. 1914년 4월 상순, 1915년 1월 3일, 1916년 1월 3일 감옥에서 각각 기록한 내용이다.
『연강집(蓮岡集)』은 2책으로 되어 있으며, 필사본이다. 사주쌍변(四周雙邊)[지면의 둘레를 두 개의 검은 선으로 두름]이며, 계선(界線)[본문의 각 줄 사이를 구분하는 선]이 있다. 10행 22자이며, 주는 쌍행이고, 20.6×13.8㎝이다.
『연강집(蓮岡集)』 권3은 표지에 ‘갑인사월상한사(甲寅四月上浣寫)’, ‘을묘원월삼일등옥중시(乙卯元月三日謄獄中詩)’, ‘병진원월삼일등옥중시(丙辰元月三日謄獄中詩)’라고 되어 있다. 이어 ‘책혈수대정(責血讐大正)’, ‘책대역부도완용(責大逆不道完用)’, ‘송일본민권당(送日本民權黨)’ 등 일본과 매국노를 규탄하는 시, 옥중생활에서의 느낌을 적은 시가 수록되어 있다. 권4는 표지에 ‘갑인사월상한(甲寅四月上浣)’이라 적혀 있고, 「연강서(蓮岡序)」와 「연강자서(蓮岡自序)」, 「연강기((蓮岡記) 」 등 저자의 호와 관련된 글과 6편의 기문이 수록되어 있다. 이어 일본 천황과 총독, 이완용 등을 꾸짖는 서간문과 「몽색조선가(蒙索朝鮮歌)」, 유서(遺書), 제문(祭文), 「갑인칠월이오장서사삼년구수일기(甲寅七月以五長書事三年拘囚日記)」 등의 일기, 훈가서(訓家書), 교자문(敎子文), 권농문(勸農文), 경속문(警俗文), 복구문(復舊文), 훈시배문(訓時輩文), 탄시가(歎詩歌), 감몽가(感夢歌) 등 시국을 비판하는 글과 송계서(松契序), 위친계서(爲親契序)가 수록되어 있다. 또한 마지막으로 잡저(雜著)에 해당하는 『대학(大學)』 1편이 해설되어 있어서 미완의 문집임을 보여주고 있다.
『연강집(蓮岡集)』은 한일병합조약 이후 일본 천황과 총독, 매국노를 규탄하는 최두영의 항일운동 경력과 우국지사의 면모, 옥중생활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