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건축의 흔적이 남아 있는 국내 유일의 하앙식 건축, 화암사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001362
한자 百濟建築-痕跡-國內唯一-下昻式建築, 花巖寺
영어공식명칭 Hwaamsa Temple, Only Haangsik Architecture the Trace Remains of Baekjae Arcitecture in the Countury
분야 문화유산/유형 유산,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전라북도 완주군
시대 고대/삼국 시대/백제
집필자 남해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소재지 화암사 - 전라북도 완주군 경천면 화암사길 271 지도보기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에 백제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의 흔적이 남아 있는 국내 유일의 하앙식 건축물인 화암사.

[완주 화암사]

화암사전라북도 완주군 경천면 불명산 시루봉 남쪽 골짜기에 있다. ‘화암사’라는 명칭은 신라 때 의상(義湘)이 서역에서 전단목(栴檀木)을 가져와 심었는데 그 향기가 절에 가득하여 ‘화암사(花巖寺)’라고 하였다고 한다. 15세기에 기록된 「화암사 중창기(花巖寺重創記)」에 의하면 ‘화암사고산현(高山縣) 북쪽 불명산(佛明山)에 있다. 골짜기가 그윽하고 깊숙하며 봉우리들은 비스듬히 잇닿아 있으니, 사방을 둘러보아도 길이 없어 사람은 물론 소나 말의 발길도 끊어진 지 오래다. [중략] 고요하되 깊은 성처럼 잠겨 있으니 참으로 하늘이 만들고 땅이 감추어둔 복된 곳이다.’라고 하여 골짜기 깊숙한 곳에 절이 있음을 묘사하고 있다.

화암사가 언제 생겼는지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다. 단지 1572년(선조 5)에 세워진 화암사 중창비(花巖寺重創碑)에 의하면 화암사는 신라 때 원효, 의상 두 스님이 화암사에 석정(錫杖)을 걸고 절을 지어 머무르면서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절의 주존불인 수월관음상은 의상 스님이 도솔천에서 노닐다가 관세음보살의 진신을 보고 만든 것으로 등신불(等身佛)의 원형이라고 한다. 화암사의 동쪽 산마루에 대(臺)가 있는데 이를 원효대(元曉臺)라 하고 절의 남쪽에 암자가 있는데 이를 의상암(義湘庵)이라 하여 이 내용을 뒷받침하고 있다.

전라북도 완주군 화암사는 처음 세워진 이후 오늘날과 같은 가람을 형성하게 된 것은 1425년 조선시대에 이르러서이다. 2품 벼슬인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를 지낸 무신 성달생(成達生)[1376~1444]이 원찰(願刹)을 삼을 목적으로 시주하여 주지 해총(海聰)과 같이 대대적인 불사를 일으켜 오늘날과 같은 가람의 면모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전에 같은 이름의 또 다른 인물 달생(達生)이 화주가 되어 중창하기도 했지만 이때만은 못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으로 극락전과 우화루를 비롯한 절의 주요 건물이 소실되었던 것을 1605년에 극락전, 1611년에 우화루를 복구하였다. 이후 1714년을 비롯하여 몇 차례의 중건과 중수를 거치면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이로 인하여 이 절의 건축에는 백제에서부터 고려·조선 시대의 건축적 내용이 담겨 있기도 하다.

[화암사의 건축구성]

화암사에 가기 위해 산길을 올라 작은 진입로를 따라가면 좌측으로 정문 2층 누각인 우화루를 만나게 된다. 우화루 앞에는 다리를 건너 작은 공간이 있는데 진입을 고려한다면 측면 진입이 된다. 정면에 2층 누각이 있는 경우 누하를 통하여 진입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화암사는 우화루 측면에 민가처럼 서 있는 3칸의 ―자 집을 통하여 진입하게 되어 있다. 그리하여 정면에 우화루가 있고 좌측에 문간채가 있으며 그 사이에 있는 대문을 통해서 출입이 이루어진다. 우화루 우측에는 높은 단위에 명부전(冥府殿)이 있다.

화암사 주불전의 공간구성은 대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극락전이 보이고 좌측에 요사채인 적묵당(寂默堂)이 있으며 우측에 불명당(佛明堂), 그리고 전면에 우화루(雨花樓)가 열린 ㅁ자형으로 중정을 형성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중정형 사찰이다. 불명당 자리에는 본래 정면 5칸, 측면 3칸의 조사전(祖師殿)이 있었다고 한다. 불명당과 극락전 사이의 뒤편에 철영재(啜英齋)가 있다. 그리고 적묵당 뒤편 좌측에 산신각(山神閣)이 바위와 함께 있다.

화암사 우화루(雨花樓)는 극락전과 마주하고 있는 2층 누각 건물이다. ‘우화루’라는 명칭은 글에서처럼 “꽃비가 날리는 누각”이란 의미인데 마을 사람들의 구전에 의하면 옛날에 주변에 꽃나무가 많아 꽃비가 많이 날렸다고 한다. 1611년(광해군 3) 중창되어 1629년, 1666년, 1711년, 1806년에 보수되었으며 최근인 1981년에 마지막 보수공사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2층 누각 건물로 바닥은 누마루로 되어 있다. 구조는 1단의 외벌대 기단 위에 자연석 덤벙주초를 놓고 두리기둥을 세운 다음 2층 누각을 얹었다. 2층은 두리기둥을 세우고 창방과 평방으로 결구하였다. 공포는 다포식으로 내외 2출목이다. 가구는 1고주 5량 구조로 2중 보를 두었다. 측면에서 보면 2개의 고주위에 보를 결구하고 종도리를 받게 한 것처럼 보인다.

내부에서는 내진 기둥과 후면 평주 사이에 대들보를 결구하고 퇴보는 고주와 전면 평주 위의 공포와 결구하여 두 개의 양통간(兩通間)을 형성하였다. 대들보 위에는 포대공을 설치하여 종도리와 중도리를 받치도록 하고 대들보와 종량 중간에는 파련각(波蓮刻)[건축 장식의 하나로, 연속한 화초형을 새긴 것]을 한 대공을 세웠다. 지붕은 겹처마에 맞배지붕 양식이다. 창호는 위층의 경우 칸마다 널벽을 치고 중앙에 문을 내어 바라지창[벽 위쪽에 바라보기 좋게 뚫은 창]을 달았다. 안마당 쪽의 벽은 기둥 외에는 벽체나 창호를 두지 않고 완전히 개방하여 중정 공간이 넓게 보이도록 하고 있고 양쪽 측면은 흙벽으로 마감하였다.

우화루의 대표적인 건축기술은 공간구성인데 전면과 후면의 지형차를 인위적인 건축물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연결하고 있다는 점과 중정 마당의 좁은 공간을 2층 누마루와 높이를 같이 하여 중정 공간이 넓게 보이도록 하였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2층 누각의 경우 누하를 통하여 진입이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나 화암사의 경우는 우화루 좌측의 대문을 통하여 출입이 이루어지고 있다. 화암사 우화루는 1980년 6월 11일 보물 제662호로 지정되었다.

화암사 극락전은 고려 후기인 1297년~1307년 사이에 초창이 이루어지고 1425년~1440년 무렵에 중창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1년에 이루어진 화암사에 대한 실측조사와 보수공사에서 극락전이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고, 이를 1605년과 1714년에 중수하였다는 내용의 상량문과 묵서명이 발견되었다[만력 삼십삼년 을사유월 초파일(萬曆 三十三年 乙巳六月 初八日)]. 화암사 극락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이다. 구조는 화강암 자연석 기단을 축조하고 덤벙주초를 놓은 다음 민흘림의 두리기둥을 세우고 창방과 평방으로 결구하고 있다. 공포는 다포식이고 외 2출목 내 3출목이며 하앙구조로 되어 있다. 지붕은 겹처마에 맞배지붕 양식이다. 창호는 정면의 경우 빗살문으로, 중앙 어간에는 4짝의 분합문을 달고 협간에는 3짝의 문을 설치하였다. 양쪽 측면에는 앞쪽에 출입문을 1짝씩 달고 나머지는 벽체로 마감하였으며, 후면은 벽체로 마감되어 있는데 벽 중앙부에 문짝을 달았던 흔적이 있다. 극락전 내부에는 중앙 간 후면에 불단을 설치하고 관세음보살상을 봉안하였으며 그 위에 닫집을 올려놓았다. 단청은 내·외부 모두 화려한 금모로 단청을 하고 있다. 화암사 극락전은 1980년 6월 11일 보물 제663호로 지정되었으며, 2011년 11월 28일 보물 제663호에서 국보 제316호로 승격, 고시되었다.

적묵당(寂默堂)은 요사채로 날개채 형상의 건물이 ㄷ자형을 이루고 있다. 정면 안마당 쪽으로는 길게 툇마루를 형성하고 방으로 진입하도록 하였다. 몸채와 두 날개 채가 교차하면서 자연스레 만들어진 뒷마당은 적묵당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사생활을 유지하는 공간이 된다. 구조는 1단의 외벌대 기단 위에 덤벙주초를 놓고 두리기둥을 세운 다음 창방과 결구하고 있다. 공포를 설치하였으며 지붕은 홑처마에 맞배지붕 양식이다.

명부전은 우화루 동쪽과 불명당 남쪽에 있는데 정면 3칸, 측면 2칸의 불전건축이다. 구조는 2단의 기단 위에 자연석 덤벙주초를 놓고 두리기둥을 세운 다음 창방, 평방과 결구하고 있다. 가구는 3량 집이며 지붕은 겹처마에 맞배지붕 양식이고 풍판이 설치되어 있다.

불명당은 화암사 중정의 동쪽에 있는데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좌측 2칸은 전면에 마루가 설치되어 있고 후면에는 방이 있으며 우측 1칸은 방으로 되어 있다. 구조는 자연석으로 쌓은 기단 위에 자연석 덤벙주초를 놓고 두리기둥을 세운 다음 도리와 결구하고 있다. 지붕은 홑처마에 맞배지붕 양식이다.

산신각은 적묵당 뒤편의 암반 위에 있는데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구조는 암반 위에 덤벙주초를 놓고 두리기둥을 세운 다음 창방과 결구하고 있다. 지붕은 홑처마에 맞배지붕 양식이고 풍판이 설치되어 있다.

철영재는 극락전 우측, 불명당 뒤쪽에 있는데 정면 1칸, 측면 1.5칸으로 전면에 반 칸의 마루가 설치되어 있고 후면에 실이 있는 전퇴개방형 평면이다. 구조는 낮은 1단의 외벌대 기단 위에 자연석 덤벙주초를 놓고 방형 기둥과 두리기둥을 혼용하여 세운 다음 보와 결구하고 있다. 지붕은 홑처마에 맞배지붕 양식이다.

[우리나라 유일의 하앙식 구조, 화암사 극락전]

화암사 극락전에는 우리나라 유일의 하앙식 구조가 있다. 하앙은 도리와 서까래 밑에서 처마를 받쳐주는 경사진 목부재를 말하는데 공포 위에 얹히고 도리 아래에 놓아 상부 하중으로 눌러서 처마를 길게 뺄 수 있도록 하는 부재이다. 이 하앙의 안쪽 끝부분은 도리에 걸어 지붕의 하중을 받게 하고 바깥쪽은 처마를 받치게 하여 두공[큰 규모의 목조 건물에서, 기둥 위에 지붕을 받치며 차례로 짜올린 구조]을 중심으로 서로 균형을 이루게 한다. 이로 인하여 밖으로 돌출한 하앙의 길이만큼 처마를 길게 뺄 수 있고 공포와 상부 가구를 견고하게 하여 지붕의 하중을 효과적으로 배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앙으로 이루어지는 하앙식(下昻式) 구조는 도리 바로 밑에 있는 살미(山彌)[전통적인 목조건축물에서 사용되는 부재]가 서까래와 같은 경사를 가지고 처마도리와 중도리를 지렛대 형식으로 받는 공포형식을 말한다.

이 양식은 중국에서 처음 시작되었고 중국 남조와 같이 비가 많이 오는 평야지방에서 처마를 길게 빼기 위해 발달한 구조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화암사 극락전에만 존재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하앙양식은 중국에서 시작되어 한반도로 전파된 다음에 우리나라가 일본에 전해준 대표적인 건축기술이자 양식으로 일본에서는 나라시대(奈良時代)부터 사용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사용되기 시작하였고 백제 건축의 대표적인 양식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 일본의 호류사(法隆寺) 금당과 5층 목탑을 건축할 때 그 기술을 전파해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양식적인 측면에서도 화암사 극락전의 경우 다포양식으로 된 하앙구조이지만 중국의 경우 요나라와 금나라의 건축물에서는 주심포 양식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화암사 이전에 실제 건축은 알 수 없었지만 고려 말~조선 초인 14~15세기 초에 제작된 아집도대련(雅集圖對聯)에서 하앙에 관한 내용을 볼 수 있고 백제시대 때 제작된 청동소탑이나 금동삼존불감에서도 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발간된 『조선고적도보』에 의하면 “김제 금산사 금강문”에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존재하지 않고 화암사에만 있다. 중국의 경우 당대의 대표적인 건축물인 산서성의 불광사(佛光寺) 대전(大殿)이나 절강성 영파시에 건축된 보국사(保國寺) 대전(大殿), 요나라 때 천진시 계현성에 건축된 독락사(獨樂寺) 관음각(觀音閣) 등에서 볼 수 있으며 일본에서도 역시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되었던 양식이다.

화암사 극락전의 하앙은 중국이나 일본의 하앙과 또 다른 점이 있다. 일반적으로 중국과 일본의 하앙은 단순히 각재를 사용하여 구조적인 역할만 수행하게 되어 있으나 화암사 극락전의 하앙은 구조와 장식의 역할을 겸하고 있다. 전면의 하앙은 일반적인 다포계 건물과 같이 살미첨차의 머리를 경사지게 하고 그 위에 하앙을 받았다. 그리고 하앙의 부리 위에는 소로를 얹고 외목도리를 걸쳤으며, 다시 그 위에 용머리를 조각한 부재가 돌출되어 있다. 하앙의 끝부분 장식은 용의 부리를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용의 입에서 나온 화염과 여의주를 발톱으로 움켜쥔 모습을 투각하여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전체적으로 하앙 전체를 한 마리의 용으로 장식화한 기법이다. 반면에 뒷면의 하앙은 아무런 장식 없이 길게 기하학형의 삼각형 모양으로 날카롭게 하였다. 전면의 하앙에 비하여 구조와 기능적인 면에 치중하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화암사 극락전의 하앙은 구조적인 면과 장식적인 면을 동시에 표현한 아주 아름다운 건축술인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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