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2330
한자 李瓊
영어공식명칭 Lee Kyung
이칭/별칭 이우당(二憂堂)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
시대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도성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337년연표보기 - 이경 출생
활동 시기/일시 1360년 - 이경 국자감시 급제
활동 시기/일시 1368년 - 이경 화주목사 부임
활동 시기/일시 1392년 - 이경 두문동 은거
출생지 하빈 -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하빈 -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개경 - 북한 개성특별시
사당|배향지 이우당 - 대구광역시 북구 이곡길 69-5[서변동 80]지도보기
사당|배향지 기동서원 -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기리1길 17[기리 444]
성격 문관
성별 남성
본관 하빈(河濱)
대표 관직 화주목사

[정의]

고려 후기 대구 출신의 문관.

[가계]

이경(李瓊)[1337~?]의 본관은 하빈(河濱)이며, 호는 이우당(二憂堂)이다. 할아버지는 하빈이씨 시조인 예부상서 이거(李琚)이며, 아버지는 이정기(李挺基)이다. 어머니는 원천석(元天錫)의 딸 원주원씨(原州元氏)이다.

[활동 사항]

이경은 1337년(충숙왕 후 6)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에서 태어났다. 이경은 여섯 살 때 치악산으로 가서 외할아버지 원천석에게 글을 배웠으며,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360년(공민왕 9) 국자감시(國子監試)에 급제하였고, 1367년에는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 등과 성균관에서 강론하였다. 1368년 화주목사를 역임하였고, 우왕(禑王) 대에는 이인임(李仁任) 일파에 의하여 정몽주 등과 함께 유배형을 받기도 하였다.

1392년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하자 이경은 고려에 대한 절의를 지키기 위하여 두문동(杜門洞)으로 들어가 ‘두문동 72현’의 한 사람이 되었다. ‘이우당’이라는 호는 야은(冶隱) 길재(吉再)가 이경의 집에 당호(堂號)로 써 준 것이라고 한다. 두 가지 걱정을 뜻하는 이우(二憂)는 ‘나아가도 나라 걱정, 물러나도 나라 걱정[進亦憂, 退亦憂]’이라는 뜻이다.

[학문과 저술]

이경의 저술로는 『이우당실기(二憂堂實紀)』가 있다.

[상훈과 추모]

이경은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기리1길 17[기리 444]에 있는 기동서원(基洞書院)에 배향되었다. 이경을 추모하기 위하여 1910년에 후손들이 북구 서변동 80이우당(二憂堂)을 건립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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