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9004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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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朝宗面 襲擊事件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기도 가평군 조종면 상판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주혁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908년 11월 24일 - 조종면 습격사건 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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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결 시기/일시 | 1908년 11월 24일 - 조종면 습격사건 종결 |
발생|시작 장소 | 경기도 가평군 조종면 상판리 |
종결 장소 | 경기도 가평군 조종면 상판리 |
성격 | 사건 |
[정의]
1908년 경기도 가평군 조종면 상판리에서 의병이 일본 헌병에게 몰살당한 사건.
[역사적 배경]
1907년 을사조약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파견한 헤이그특사 사건을 계기로 고종은 강제 폐위되었으며, 대한제국 군대는 해산되었다. 이에 전국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이 시기 가평군 상면·하면에서는 120여 명의 의병들이 활동을 하고 있었다.
의병은 먹을 양식과 입을 의복이 없어 곳곳에서 동지들의 협조를 얻었다. 그러나 당시 일제의 감시가 극심하여 의병에게 동조하다 발각되면 화를 면할 수 없었기 때문에 협조자를 구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따라서 의병들은 부유한 탐관오리의 가옥을 기습·강탈하였다. 가평군 하면 망동(望洞)에 거주했던 나봉산(羅奉山)[1860~1910]은 의병들과 함께 영평군[현 포천군] 지구유지(芝久留地) 지역의 조판서(趙判書) 집에서 천냥을 얻어냈지만 되돌아오는 길에 관헌에게 붙잡혀 징역 5년형에 처해졌다. 이러한 강제에 의한 식량·의복의 확충 이외에도 가평 주민에게 자발적인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경과]
전국적으로 의병이 활발하게 활동하자 일본 헌병은 가평 일대에서도 의병 활동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1908년 음력 11월 24일, 조종면 상판리 근처에서 의병 30여 명이 변복한 일본 군인 10여 명에게 몰살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