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9005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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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加平 簡氏 |
영어공식명칭 | Gapyeong K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기도 가평군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주혁 |
[정의]
간균을 시조로 하는 경기도 가평군의 세거 성씨.
[개설]
가평 간씨는 고려 의종 때 문하시중평장사를 지낸 상절(尙節) 간균(簡筠)을 시조로 한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가평현의 토성(土姓), 즉 ‘지방에 토착하고 있던 재지 씨족 집단의 성씨’로 탁씨(卓氏)와 함께 기록되어 있다. 주요 인물로는 고려시대에 군기감(軍器監) 사(事)를 지낸 간유(簡有), 조선시대에 부승지를 지낸 간능언(簡能彦) 등이 있다. 조선시대에 무과 급제자 12명을 배출하기도 하였다.
[입향 경위]
가평 간씨의 시조인 간균은 1164년(의종 18) 문과에 급제한 후 여러 벼슬을 두루 거쳤다. 1189년(명종 19) 관직에서 물러난 뒤 지금의 경기도 가평군에 해당하는 풍덕(豊德) 백후동(栢後洞)으로 내려가 시와 문장을 벗 삼다가 일생을 마쳤다고 한다. 이후 간균의 손자인 중시조 간주(簡柱)가 충숙왕 때 민부(民部) 전서(典書)를 지내며 나라에 큰 공을 세우고 가평군(加平君)에 봉해지자 후손들이 가평을 본관으로 하였다.
[현황]
가평 간씨는 한국 전체 성씨 중 소수에 해당하나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인구 센서스 통계에 의하면, 1985년 462가구 1,939명, 2000년 639가구 2,076명, 2015년 2,397명[남 1,244명, 여 1,276명]이 확인되었다. 1991년 당시 가평읍 내에 1가구 6명, 상면에 1가구 4명이 거주하였다.
[관련 유적]
가평 간씨 유래문이 대전광역시 중구 뿌리공원로 47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