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9005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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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具夏柱 |
영어공식명칭 | Gu Hajoo |
이칭/별칭 | 우향(禹鄕)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가평군 북면 소법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성환 |
몰년 시기/일시 | 1714년 - 구하주 사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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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임|활동지 | 진잠현 - 대전광역시 유성구 |
묘소|단소 | 구하주 묘 - 경기도 가평군 북면 소법리 이봉골 |
성격 | 문관 |
성별 | 남 |
본관 | 능성 |
대표 관직 | 진잠현감 |
[정의]
경기도 가평군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 문신.
[가계]
구하주(具夏柱)[?~1714]의 본관은 능성(綾城)이고, 자는 우향(禹鄕)이다. 부인은 여산 송씨이고, 아들로 배천군수 구정훈(具鼎勳), 지중추부사 구수훈(具樹勳) 등이 있다. 윤증(尹拯)의 삼촌인 윤택(尹擇)과 사돈 관계로 딸을 윤석교(尹碩敎)에게 출가시켰다.
[활동 사항]
구하주는 어려서부터 성품이 어질었다 하며, 11세에 어머니 상을 당해서도 상례를 어른과 같이 하였다고 전한다. 벼슬은 익릉참봉(翼陵參奉)을 시작으로 내섬시(內贍寺) 봉사(奉事), 의영고(義盈庫) 직장(直長), 사도시(司䆃寺) 주부(主簿) 등을 역임한 후, 통훈대부에 올라 진잠현감(鎭岑縣監)[진잠현은 지금의 대전광역시 유성구]으로 나갔다. 자연재해를 입은 논밭의 분급(分給)을 잘못하여 충청감사 홍중하(洪重夏)에 의해 논죄되었다.
[묘소]
구하주의 묘는 경기도 가평군 북면 소법리 이봉골에 있다. 묘비는 사헌부 대사헌 박필주(朴弼周)가 지었다. 묘비가 너무 커서 세우는 데 어려움이 있었으나, 여덟 살 난 동자가 지팡이 하나로 세우도록 하였다는 전설이 전한다.
[상훈과 추모]
구하주는 가선대부·이조 참판 겸 동지의금부사 오위도총부 부총관에 증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