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900610
한자 李普行
영어공식명칭 Lee Bohaeng
이칭/별칭 이보(易甫)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가평군 상면 율길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성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718년연표보기 - 이보행 출생
활동 시기/일시 1754년 - 이보행 생원시 합격
활동 시기/일시 1771년 - 이보행 김포군수 제수
활동 시기/일시 1771년 - 이보행 정시 문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775년 - 이보행 승지 제수
활동 시기/일시 1776년 - 이보행 전라도관찰사 제수
활동 시기/일시 1777년 - 이보행 성균관 대사성 제수
활동 시기/일시 1779년 - 이보행 사헌부 대사헌 제수
활동 시기/일시 1780년 - 이보행 추자도로 유배
몰년 시기/일시 1787년연표보기 - 이보행 사망
부임|활동지 김포군 - 경기도 김포시
부임|활동지 전라도 - 전라도
유배|이배지 추자도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추자면 추자도
묘소|단소 이보행 묘 - 경기도 가평군 상면 율길리 지도보기
성격 문관
성별
본관 용인
대표 관직 사헌부 대사헌

[정의]

경기도 가평군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 문신.

[가계]

이보행(李普行)[1718~1787]의 본관은 용인(龍仁)이고, 자는 이보(易甫)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윤악(李胤岳), 할아버지는 이세운(李世雲), 아버지는 이의하(李宜夏)이다. 어머니는 김석창(金錫昌)의 딸이다.

[활동 사항]

이보행은 1754년(영조 30)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1771년(영조 47)에는 김포군수를 지내면서 다시 정시 문과에 응시하여 을과로 급제하였다. 1775년(영조 51) 승지가 되었다. 1776년(영조52)에는 승지로서 궁실에서 사치를 절검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776년(정조 즉위년) 3월 전라도관찰사로 임명되었다. 전라도관찰사로 재직하면서 양전(量田)을 실시하여 진전(陳田)[경작하지 않은 토지]에 대한 수세(收稅) 방안을 마련하였고, 전주부[지금의 전라북도 전주시]의 성첩(城堞)을 개축하기도 하였다. 1777년(정조 1) 병으로 전라도관찰사에서 체직되었으나 곧 성균관 대사성으로 복귀하였다.

이후 행부사직(行副司直)이 되었고, 1778년(정조 2) 대신들이 수어청(守禦廳)과 총융청(摠戎廳)을 합치는 것을 논의할 때 양청(兩廳)의 혁파를 주장하였다. 이후 사간원 대사간, 동지경연사(同知經筵事), 이조 참판, 선혜청 제조 등을 역임하였고, 1779년(정조 3)에는 사헌부 대사헌에 제수되었다. 사헌부 대사헌으로 있으면서 역적 홍계능(洪啓能)과 관련되었다는 이유로 서명응(徐命膺)의 처벌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오히려 이보행이 1780년(정조 4)에 추자도(楸子島)로 유배되었고, 1787년(정조 11) 유배지에서 사망하였다.

[묘소]

이보행의 묘는 경기도 가평군 상면 율길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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