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9006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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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具仁蘭 |
영어공식명칭 | Thomas F. Quinlan |
이칭/별칭 | 토마스 퀸란 |
분야 | 종교/기독교,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종교인 |
지역 | 경기도 가평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임인재 |
[정의]
일제 강점기부터 해방 이후까지 경기도 가평에서 활동한 천주교 주교.
[활동 사항]
구인란(具仁蘭)[1896~1970]은 한국식 이름으로 본명은 토마스 퀸란(Thomas F. Quinlan)이다. 아일랜드 출신으로, 세례명은 Most Rev Thomas Quinlan이다.
1934년 성 골롬반 선교회가 한국에 신설된 광주교구를 맡게 됨에 따라 같은 해 11월 한국에 입국하였다. 구인란은 한국어를 배우며 광주, 목포 등지의 주임신부로 활동하던 4년을 제외한 32년을 강원도에서 보냈다. 1938년 춘천교회 주임신부로 부임하여 지금의 춘천시 죽림동 천주교 구내의 움막에서 선교를 시작하였다. 강원도 전역을 순방하며 선교를 계속하여 재위하면서 신도를 4만 명 이상 늘렸다.
광복 이후 한국전쟁 때인 1950년 7월 2일 춘천의 죽림동 본당에서 손 프란치스코 신부와 함께 북한군에게 연행되어 34개월간 14개 수용소를 전전하였다. 1953년 4월 인민군의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되어 고국인 아일랜드로 돌아갔다가 같은 해 10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다시 춘천지목구장을 맡고, 주한 교황사절 서리로 임명되었다. 1955년 9월 20일 춘천지목구가 춘천대목구로 승격되었으며, 구인란 신부는 성 골롬반 축일인 11월 23일 명동성당에서 주교로 서품되었다. 이로써 구인란 주교는 천주교 춘천교구 최초의 주교가 되었다. 천주교 춘천교구는 강원도 북부지역과 경기도 포천시·가평군을 관장하는 지역교회이다.
1955년에는 포천 본당의 설립에 힘썼다. 당시 포천 일대에 주둔했던 6군단 군단장 이한림[세례명:가브리엘] 장군이 익명의 독지가가 기증한 1,000여 평 대지에 공병 부대의 도움을 받아 성당 건축을 추진하였다. 1955년 11월 60평의 석조 건물로 된 성당과 사제관 20평을 완공하였고, 12월에 구인란 주교의 주례로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성당이 건축된 직후 6군단 조상익(趙相益) 베드로 군종 신부가 포천 신자들의 사목을 담당하다가 1956년 2월 김진하(金瑨河) 요한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포천 본당이 설립되었다.
1962년 춘천대목구는 1962년 정식 교구로 승격되었으며, 구인란은 1966년 2월 12일까지 춘천교구장을 역임하면서 선교에 힘쓰다 1970년 12월 31일 삼척에서 사망하였다.
[사상과 저술]
구인란 주교는 춘천대목구에 가톨릭 학교가 없어 청년 교육에 어려움이 있음을 인식하고, 1961년 성심수녀회(聖心修女會)와 협의하여 춘천에 여자대학을 유치하기로 하였다. 구인란 주교의 노력으로 강원도의 협조를 받아 학교 부지를 얻고, 춘천교구에서 일부 재정지원을 하였다. 그리하여 1964년 3월 1일 춘천성심여자대학이 개교하였다.
[묘소]
유해는 천주교 춘천교구 성내리 성당에 안장되었다가 이후 춘천시 죽림동 성당 구내의 성직자 묘지로 이장되었다.